"아내 모습 보고 저도 결심".. 타인에게 신장 기증한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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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해요.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본인이 먼저 하겠다고 해서 아주 장해요.”

신장 이식 수술을 앞둔 김영철씨와 아내 서유연씨가 19일 손으로 하트를 만들고 있다. [사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신장 이식 수술을 앞둔 김영철씨와 아내 서유연씨가 19일 손으로 하트를 만들고 있다. [사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서유연(51ㆍ여)씨가 신장 이식 수술을 앞둔 남편을 옆에 두고 말했다. 남편 김영철(51)씨는 이름도 모르는 타인에게 자신의 신장 하나를 기증하기로 했다. 수술을 하루 앞둔 19일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했다.

김씨의 신장 이식이 특별한 건 아내 서씨 역시 2003년 다른 사람에게 신장을 기증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신장 기증 부부’다.

서씨는 만성신부전 환자가 나온 방송을 보고 신장 기증을 결심했다고 한다. 서씨는 “TV에 나온 젊은 아가씨가 물을 마음껏 마셔보고 싶다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안타까웠다. 저런 사람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만성신부전증을 앓는 사람들은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제한된 양의 물만 마실 수 있다.

신장을 기증한 이후 서씨의 삶은 많이 바뀌었다. 다른 기증자들은 물론 신장을 이식받은 사람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헌혈과 봉사활동도 지속적으로 하게 됐다.

이런 아내의 모습은 남편 김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김씨는 “아내가 수술 후에 더 행복하게 살더라. 수술 후유증 없이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은 물론이고 마음이 행복한 사람이 된 걸 보고 나도 기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유연씨가 신장 기증 수술을 앞둔 남편 김영철씨를 격려하고 있다. [사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서유연씨가 신장 기증 수술을 앞둔 남편 김영철씨를 격려하고 있다. [사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어쩌면 ‘신장 기증 가족’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부모의 모습을 본 딸도 감동했기 때문이다. 간호대에 다니는 딸 김지원(23)씨는 “어릴 때 어머니가 신장 기증하시는 모습을 봤는데 이번엔 아버지도 동참해서 자랑스럽다”며 “저도 30대 후반이 되면 신장 기부를 고민해 볼 계획이다”고 밝혔다.

김씨의 신장을 이식받을 사람은 만성신부전 환자인 이인만(43)씨다. 20년간 혈액투석을 받아온 이씨는 “천사 같은 분을 만나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신장 기증이 흔한 일은 아니다. 지난해엔 2233건의 신장 이식이 있었다. 지난해 말 기준 신장이식 대기자는 1만7959명이다. 특히 그 중 타인에게 신장을 이식받은 경우는 38건에 불과하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요즘 가족들에게 신장기증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타인에게 기증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그렇기에 부부가 함께 신장을 기증하는 건 더욱 특별하다”고 말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신장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는 2015년 기준 평균 1904일을 기다려야 한다. 2010년에 828일을 기다려야 했던 것에 비해 늘어났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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