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들러리 서지 않겠다"-청와대 회동에 임하는 5당의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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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제69주년 제헌절 경축식에 참가한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부터) 조문규 기자

17일 제69주년 제헌절 경축식에 참가한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부터) 조문규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대통령-여야 대표’회동이 19일 열린다. 현재까지 깔끔한 모양새는 아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불참 의사를 거듭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17일 “FTA를 슬쩍 넘어가려는 이런 (회동에) 들러리로 참석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2009년 FTA 협상 당시 자신을 매국노라고 했던 것을 우선 사과해야 한다고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홍 대표가 큰 결단으로 와 주길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오지 못해도 회동은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5당 체제의 ‘대통령-여야 대표’ 첫 만남은 제1야당 대표가 빠진 채 남 2(문재인 대통령ㆍ박주선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여3(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여초 회동’이 될 전망이다.
◇“안 가는 게 남는 장사”=홍 대표의 불참에 대해 한국당 핵심당직자는 “가 봐야 득 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협치는 커녕 밀어붙이기만 하는데, (회동에) 가면 결국 문 대통령 국정 운영방식을 인정해주는 꼴”이라고도 했다.
역대 영수회담은 야당이 울면 대통령이 달래주는 형식이었다. 수확이 있든 없든 성사되는 것 자체로 “야당 대표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라는 게 정설이었다. 반면 이번 회동은 청와대가 선제적으로 제안했다. 한ㆍ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성과를 설명한다는 취지였다. 한국당 당직자는 “장관임명과 추경안으로 정국이 꽉 막혀 있던 지난주였다면 전격 회동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지금은 다 풀리지 않았나. 근데 왜 만나나. 현안이 없다. 결국 대통령 업적 홍보하는 데 와서 사진 찍으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현재 국면에서 문 대통령과 분명한 대립각을 세우는 게 자유한국당도, 홍 대표도 정치적으로 불리하지 않다는 계산”이라고 분석했다. 홍 대표는 16일 페이스북에 “저들이 본부중대, 1ㆍ2ㆍ3중대를 데리고 국민 상대로 아무리 정치쇼를 벌여도 우리는 갈 길을 간다”고 했다. 홍 대표의 회동 거부에 대해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단독회담하자는 투정이고 독상 받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당청 복원 노리는 추미애=청와대 회동에 선선히 응한 다른 4당 대표도 나름의 셈법이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치권에선 추미애 대표가 문 대통령과 어떤 모습을 연출할 지 관심이 높다. 지난 13일 임종석 비서실장‘대리 사과’, 조대엽 후보자 자진 사퇴 과정에서 ‘추미애 패싱’이란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추 대표측은 흔들림없는 당청관계를 재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반면 ‘대리 사과’를 통해 체면을 살린 국민의당은 “참석하되 할 말은 하겠다”는 전략이다. 박주선 비대위원장은 이날 “국정운영 100대 과제를 정했다는 데 야당에겐 사전 설명 한마디 없었다. 문 대통령은 협치할 의향이 조금이라도 있는가”라고 따졌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무조건 발목잡기도, 추인도 아니다. 제 3당의 존재감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17일 최고위원회의 참석한 이혜훈 대표. [연합뉴스]

17일 최고위원회의 참석한 이혜훈 대표. [연합뉴스]

바른정당은 한국당과의 차별화가 관건이다. 이혜훈 대표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애들도 아니고 감정풀이를 하며 토라져 있을 한가한 때가 아니다”라며 칼끝을 홍준표 대표에게 향했다. 11일 당 대표로 선출된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회동을 인지도 상승 기회로 보고 있다.
◇사라져가는 영수회담=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담판을 짓는 영수회담은 과거엔 극단적 대치를 푸는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다.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등이 대표적 예다. 실제로 김영삼ㆍ김대중 정부 시절엔 영수회담이 각각 10차례, 7차례 열렸다. 하지만 집권당이 대통령 ‘거수기’로 전락해서는 안된다는, 당ㆍ청 분리가 일반화되면서 영수회담은 줄어들었다(노무현 정부 2번,이명박 정부 3번, 박근혜 정부 0번).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영수회담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용어”라고 했다.
최민우·박성훈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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