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지분 확보가 발목 잡았나… 도시바 "웨스턴디지털, 홍하이와도 매각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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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ㆍ일본의 재무적 투자자와 손잡고 도시바 반도체사업부를 사들이려던 SK하이닉스의 시도에 변수가 생겼다. 도시바가 대만의 훙하이 정밀공업, 미국의 반도체 회사 웨스턴디지털과도 매각 협상을 벌이기 시작해서다.

니혼게이자이, 도시바 CFO 인용해 보도 #"매각 결정, 생각보다 시간이 소요" 압박 #걸림돌은 SK하이닉스의 지분 확보 계획 #"일본 기술 한국에 넘길 수 없다" 여론 #하이닉스 부회장 "끝까지 포기 안 한다"

1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히라다 마사요시 도시바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같은 날 채권은행 대상 설명회에서 이런 사실을 밝혔다. 지난달 22일 우선협상대상자로 결정된 한ㆍ미ㆍ일 연합과 본계약이 지지부진해져 다른 협상 대상자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뜻이다. 히라다 CFO는 “(매각) 결정이 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소요되고 있다”고 말했다.

본계약의 걸림돌은 SK하이닉스의 출자 형태라는 게 니혼게이자이의 분석이다. 한·미·일 연합이 제시한 총 2조 엔(20조2000억원)의 인수대금 중 SK하이닉스가 대기로 한 돈은 3000억~5000억 엔. 애초엔 “지분을 확보하지 않는, 단순 융자 형태로 제공된다”고 발표됐지만 실제론 전환사채(CB) 방식의 투자였다고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전환사채는 채권 보유자가 마음을 먹을 때 미리 결정된 조건으로 발행회사의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회사채다. “SK하이닉스가 결국은 도시바의 지분을 확보해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SK하이닉스의 출자 방식이 논란이 되는 건 일본의 여론 때문이다. “일본의 반도체 기술이 해외에 넘어가선 안 된다”는 정서는 일본 정부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다. 일본의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와 일본정책투자은행 등 일본 정부 측 자금이 한미일 전체 자금의 66%를 댄 것도, 매각 이후에도 도시바의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란 분석이다.

SK그룹 측은 “인수 포기는 없다”는 입장이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12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나노코리아 2017’에 참석해 기자들에게 “끝까지 열심히 (인수 작업을) 하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SK그룹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지분 전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사실이지만, 지분 자체보다 기술적 협력 가능성이 훨씬 중요하다”며 “도시바와 하이닉스가 장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업계는 매각 협상이 갑자기 엎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관측한다. 웨스턴디지털의 경우 자금 조달 방안이 불투명한데다, 합작회사를 볼모로 매각 작업을 방해하고 나서며 도시바와 진흙탕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또 낸드플래시 시장 3위인 웨스턴디지털이 2위 도시바의 지분을 확보하려 들면 주요국의 반독점 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훙하이 정밀공업은 중국계 회사라는 점 때문에 일본 여론이 한층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도시바가 협상의 기선을 잡기 위해 다른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전략일 가능성이 크다”며 “한·미·일 연합이 여전히 가장 유력한 인수 주체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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