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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4개 브랜드 생기고 3개 없어지는 '프랜차이즈 정글'<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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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신 모(62) 씨는 돼지고기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10년 전 무역회사에서 퇴직한 후 줄곧 같은 가게에서 장사하고 있지만, 그간 업종은 세 번 바꿨다. 신 씨는 퇴직금으로 ‘쪼끼쪼끼’ 매장을 처음 열었다. 꼬치나 소시지 볶음 같은 안주와 맥주를 파는 주점이었다. 신 씨는 “퇴직 전 직장 동료들과 회식 장소로 선호하던 곳이고, 퓨전 주점이 인기를 끌 때라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고 말했다.

5200여개 프랜차이즈 난립…경쟁 치열 #가맹점 수 10개 넘는 프랜차이즈 30% 수준 불과 #인기 프랜차이즈 나타나면 어김없이 '미 투 브랜드' 등장

하지만 일본 선술집인 이자카야 등 주변에 비슷한 콘셉트의 주점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장사가 잘되지 않았다. 가게 문을 닫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인테리어 등 창업을 위해 쓴 비용뿐 아니라 가게를 인수하면서 이전 세입자에게 준 권리금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장사가 잘 안되는 가게에 권리금을 주고 들어오겠다는 세입자를 찾기 어려워서다.

고민하던 신 씨는 3년 만에 ‘벌집 삼겹살’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프랜차이즈 본사(가맹본부)의 대대적인 홍보로 1년 정도는 하루 평균 300만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본사에서 마케팅을 소홀히 하자 손님이 금세 줄었다. 결국 신 씨는 직접 가게를 운영하기로 했다. 신 씨는 "내가 했던 프랜차이즈는 결국 모두 폐업했더라"며 "직접 장을 보고 식재료를 준비하려니 하루 평균 12시간을 넘게 고되게 일하고 있지만, 본사에 매여서 써야 했던 지출이 줄었고 눈치 보지 않으니 속도 편하다"고 말했다.

국내 프랜차이즈 시장은 ‘프랜차이즈 본사 갑질’이 아니어도 3년 이상 가게를 유지하기 어려운 ‘정글’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771개의 새로운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쏟아졌다. 그사이 폐업(등록취소)한 프랜차이즈는 598개다. 하루 평균 4개의 새 프랜차이즈가 생기고 3개가 문을 닫았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의미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팀장은 “현재 5200가 넘는 프랜차이즈가 있는데 전 세계에서 꼽을 정도로 많은 것”이라며 “그만큼 전문성 없이 부실한 프랜차이즈가 많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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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창업을 부추기는 컨설팅 업체도 ‘프랜차이즈 난립’의 이유로 꼽힌다. 이들은 대개 ‘맛집’으로 소문난 음식점을 찾아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권하고 사업자 등록부터 가맹점 모집까지 지원한 후 일정 금액의 수수료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무분별한 가맹점 모집, ‘미 투 브랜드’로 중복 창업 알선 등의 문제가 생긴다. 아예 프랜차이즈 자체를 ‘사업 아이템’으로 보기도 한다. 윤 팀장은 “한 업체가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여러 개 만들기도 하고, 하나가 망하면 또 만드는 식으로 운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5년 이상 생존한 장수 프랜차이즈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전체 5273개 프랜차이즈(지난해 말 기준) 중 가맹점 수가 10개 미만인 프랜차이즈는 70% 수준이다.
차별화를 위한 독특한 아이템으로 주목을 끌어보지만 순식간에 쏟아지는 ‘미 투(Me too) 아이템’에 묻히는 경우도 적잖다. ‘설빙’은 2014년 우유 얼음을 갈아 만든 ‘눈꽃 빙수’로 인기를 끌었고 1년새 매장이 500개 가까이 늘었다. 그러자 다음해 비슷한 메뉴를 내세운 백설공주, 위키드 스노우 등이 쏟아졌다. 같은 시기에 작은 공간에서 싼 값에 맥주를 즐기는 ‘스몰비어’로 인기몰이를 한 ‘봉구비어’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상구비어, 용구비어, 춘자비어 등 비슷한 이름을 내건 매장이 1년새 1000여개 가까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저가커피전문점인 ‘빽다방’을 본 딴 핵커피●빅커피●빅다방, 저가과일쥬스전문점인 ‘쥬씨’를 따라한 킹콩쥬스●마피아쥬스 등이 있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이들 ‘미 투 브랜드’는 별다른 차별화 전략 없이 유행을 좇기 급급해 1년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며 “이런 ‘반짝 창업’으로 원조 브랜드까지 타격을 입는 악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강병오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 겸임교수는 “인기 프랜차이즈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베끼는 잘못된 관행이 만연한 것이 현실”라며 “창업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행위는 산업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정부 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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