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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건강, 지켜야 산다]#17 아들이 말하면 잘 듣고, 며느리 얘기는 외면한 이유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권선미 기자]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나이가 들면 청력이 약해집니다. 옆에서 소곤소곤 말하면 말을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노인성 난청입니다. 나이 들어서 귀 좀 안 들리는 것이 대수냐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잘 들을 수 없으니 가족과도 말이 통하지 않고 외로워집니다. 나 혼자 동떨어져 있다는 소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 뇌에 충분한 자극을 주지 못해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치매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실버 건강, 지켜야 산다] 열일곱 번째 주제는 노인성 난청입니다.

남성에게 더 빨리 심하게 나타나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성 난청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질병관리본부와 대한이비인후과학회에서 공동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60세 이상 37.4%, 70세 이상 68.9%가 경도 이상의 난청을 갖고 있습니다. 70세 이상의 중등도 난청은 3명 중 1명꼴(31%)로 보청기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50대 이후에는 연령이 10세 높아질 때마다 난청 유병률이 약 3배가량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난청은 소리를 전달·변환하는 복잡한 과정 중 어느 한 곳이 망가져 생깁니다. 노인성 난청은 청각기관 노화로 양쪽 귀의 청력이 서서히 떨어집니다. 통상적으로 청력은 30세를 넘어서면서부터 떨어집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40대부터 난청 증상이 조금씩 나타납니다. 노인성 난청은 양쪽 귀에서 비슷하게 청력감소가 진행됩니다. 난청 진행속도가 느려 청력이 나빠지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난청은 남자가 여자보다 젊은 나이에 시작됩니다. 난청 진행 정도도 심해 더 잘 듣지 못합니다.

노인성 난청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 입니다. 첫째, 고주파 영역(2000Hz 이상)을 듣는 데 취약합니다.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고음인 여성·어린아이의 목소리 대신 낮고 저음인 남성의 목소리를 더 잘 알아듣습니다. 똑같은 내용을 말해도 아들이 한 말은 잘 듣는데, 며느리가 이야기한 것은 못 들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둘째, 말소리 구별능력이 떨어집니다. 자음은 모음보다 고주파 영역에 분포하고 있어 명료도가 낮습니다. 자음 중에서 고주파 영역에 속하는 마찰음(ㅅ·ㅆ·ㅎ), 폐쇄음(ㅂ·ㅃ·ㅍ/ㄷ·ㄸ·ㅌ/ㄱ·ㄲ·ㅋ) 등을 구별·인지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또 살·발·달·말 등처럼 비슷한 소리를 내는 단음절 단어를 구분하기 어려워합니다. 결국 전체적인 어음이해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셋째, 들을 수 있는 영역이 축소됩니다. 작은 소리는 너무 작아서 듣지 못하고 큰소리는 너무 시끄러워서 듣지 못합니다. 식당·카페·시장·쇼핑몰 등 넓고 시끄러운 공간에서는 여러 가지 소리 자극이 겹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해 대화가 어렵습니다.

대화가 안 통하는 건 잘 안 들려서 노인성 난청은 노년기 삶의 질을 떨어뜨립니다. 단순히 잘 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치부하기 쉽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듣기와 말하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관계가 달라집니다. 가족이나 친구가 하는 말은 이해하지 못해 혼자 엉뚱한 소리를 하다가 대화가 끊어집니다. 다시 이런 저런 말로 대화를 시도하지만 ‘답답해서 말이 안 통해’라며 어느 순간 대화하는 횟수가 줄어듭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대화는 서로를 지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결국 공감도가 떨어져 가족·지인과 멀어집니다. 같이 있어도 혼자 있는 듯해 고독감에 우울증에 걸리기 쉽습니다. 노인성 난청환자 10명 중 2명은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치매 위험도 높아집니다. 청각은 사람의 뇌를 가장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요소입니다. 난청으로 말소리를 잘 듣지 못하면 뇌에서 언어를 변별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만큼 뇌를 충분히 자극하지 못해 인지력·기억력이 떨어져 치매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분석입니다. 실제 난청이 심한 사람들은 인지 기능이 떨어졌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이비인후과 연구팀은 1997년부터 2008년까지 70세 이상 노인 3075명을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난청과 인지 기능을 검사했습니다. 그 결과 난청인 사람은 청력이 정상인 사람보다 인지기능 점수가 낮았습니다. 매년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폭 역시 난청이 있는 사람이 더 큰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특히 난청이 심할수록 치매 발병 위험은 높아집니다. 미국 존스홉킨스의대와 국립노화연구소에서 노인성 난청과 치매와의 연관성을 2000년부터 2011년까지 12년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입니다. 노인성 난청환자 639명을 대상으로 청력검사와 인지기능 검사를 진행한 결과 청력이 정상인 경우에 비해 경도난청(26~40dB)은 치매 발생률이 평균 1.89배, 중등도 난청(41~70dB)은 3배, 71dB 이상 고도 난청은 4.94배 높게 치매가 발병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노인성 난청은 보청기를 이용한 청력재활치료가 기본입니다. 노화로 청력이 떨어지면 현대 의학기술로는 이를 회복시키기 어렵습니다. 시력이 나쁠 때 안경을 끼는 것처럼 청력이 떨어지면 보청기를 착용하는 식입니다.

보청기로 소리를 증폭시키고, 입술의 움직임과 얼굴표정 등을 관찰하는 청력재활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돕는 방식으로 치료합니다. 보청기로 소리를 증폭하면 뇌에서 익숙해지기까지 적응기간이 필요합니다. 난청을 오래 앓으면 고음역 정보를 다시 이용할 수 있기까지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보청기는 청력상태와 귀 모양, 보청기 조작 능력 등을 고려해 선택합니다. 대개 보청기가 클수록 출력이 높고, 음량이나 배터리 교체 같은 조작이 간편합니다. 하지만 보청기 자체가 외부에 보여 착용을 꺼리는 단점이 있습니다. 혼자서 보청기를 삽입하고 음량조절이 자유롭다면 비교적 크기가 작은 귓속형 보청기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소음이 많은 장소에서는 전방의 대화음을 증폭시키고 후방의 소음의 적게 수용하도록 디자인된 보청기도 개발됐습니다.

노인성 난청환자가 보청기를 착용하면 평균 17데시벨(dB·소리의 단위) 가량 작아진 소리를 더 들을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청각장애지수도 보청기 착용 전에는 46% 였지만, 착용 후에는 26%로 개선됐습니다(대한의사협회지, 2011). 보청기를 착용하면 이전보다 원활하게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덕분에 우울증이 개선되고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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