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노조가 배타적 이익에 몰두하는 사이, 일자리는 해외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39호 14면

본격화하는 夏鬪, 97년 자유주의 노동체제의 딜레마

지난 5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87년 노동자대투쟁 30주년 기념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주요 노조는 조합원 고용 보장, 정규직 임금 인상에 주로 치중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87년 노동자대투쟁 30주년 기념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주요 노조는 조합원 고용 보장, 정규직 임금 인상에 주로 치중했다. [연합뉴스]

노동계의 ‘하투(夏鬪)’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지난달 말 총파업을 벌인 데 이어 자동차업체 노조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6일 현대자동차 노조는 임금단체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협상안에는 기본급·성과급 등 통상적 임금 문제 이외에도 ‘4차 산업혁명과 자동차산업 발전에 대비한 총고용보장 합의서 체결’ 같은 요구사항도 추가됐다. 공장 자동화로 일거리가 줄어들더라도 노조원 일자리는 보장받겠다는 전략이다.

파업결의한 GM, 철수설 나돌아 #현대차·삼성전자 등 해외 공장만 #대기업-중기 연대임금 도입하고 #좀비기업, 한계 일자리 정리해야 #실업자 위한 복지 확대도 필수적

기아차도 지난 3일 중노위에 쟁의조정 신청을 마치고 파업 절차에 들어갔다. 한국GM 노조는 7일 조합원 투표를 통해 찬성률 68.4%로 파업을 결의했다.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올해 성과급 500%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주간연속 2교대 보장, 디젤 엔진 생산물량 확보 등 경영 관련 사항도 임단협에 명시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기업들은 국내 생산량 감축과 해외 공장 설립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GM의 제임스 김 사장은 지난 3일 “다음달 말 대표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GM이 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하고 오펠을 매각하는 등 글로벌 사업 재편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김 사장의 갑작스러운 사임은 한국 시장 철수 수순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GM의 지분 17%를 갖고 있는 산업은행이 한국 시장 철수에 대한 거부권을 갖고 있지만 10월 16일이면 시한이 만료된다. 특히 군산공장이 문제다.

지난해 생산량이 전년 대비 5.7% 줄어들면서 주간 1교대로 운영되고 있다. 자동차뿐 아니라 전자업체도 잇따라 해외에 공장을 설립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에 3억8000만 달러를 투자해 가전 공장을 세운다. LG전자도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2억5000만 달러를 들여 세탁기 공장을 짓는다.

이처럼 기업들이 국내에서 일자리를 늘리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고착화된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대기업 정규직이 노조를 기반으로 고용 안정성과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확보하자 기업들은 하청업체와 비정규직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그 결과 대기업·정규직과 중소기업·비정규직의 간격은 갈수록 벌어졌고 대기업·정규직 일자리마저 늘어나지 않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와 파견근로를 허용하는 노동시장 자유화가 이런 변화를 불러왔다. 자유주의 노동체제가 자리 잡은 원인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글로벌화 결과가 자유주의 노동체제

지난 6~7일 부평 한국GM 공장에선 파업 여부를 결정하는 조합원 찬반 투표가 실시됐다. [연합뉴스]

지난 6~7일 부평 한국GM 공장에선 파업 여부를 결정하는 조합원 찬반 투표가 실시됐다. [연합뉴스]

우선 기업 지배구조의 변화를 들 수 있다. 97년 외환위기에 따른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지원의 대가로 한국은 해외 자본의 국내 진입과 유가증권 거래를 전면 허용했다. 이에 따라 많은 기업의 소유권이 해외로 이전됐고, 특히 사업 성과가 뛰어났던 다수 대기업의 지분은 절반 이상이 해외 투자자에게 넘어갔다. 기업의 소유권이 분산되는 경우 다수의 주주는 주가 상승과 투자 이익 환수에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따라서 중장기적 경영 계획과 집행이 어려우며 경영자들은 시장의 평가 주기인 1년 단위의 성과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결국 기업은 비용관리와 단기수익 추구에 집중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잉여인력을 다른 분야로 전환 배치하는 등의 내부 조절을 통해 장기고용을 이어가는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또 자유주의 시스템으로 바뀐 결과 최근 한국 기업의 평균배당률은 과거에 비해 매우 높아졌다. 배당 성향이 높은 기업들의 노동소득 분배율은 점진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의 당기순이익 가운데 배당이익으로 소진되는 비중이 높아지면 내부 이해관계자인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임금 수준은 약화된다. 따라서 배당 성향이 커지는 경우 노동조합의 임금 요구 또한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로 글로벌화와 경기변동성의 확대다. 노동체제 전환의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는 생산과 판매의 글로벌화와 부가가치 생산의 다변화다. 사실 자본 이동에 따른 산업 공동화, 일자리 감소, 노동조합의 쇠퇴와 관련된 이슈는 80년대 미국에서 시작됐다. 한국의 경우 97년 이후부터 자본의 해외 이동과 해외 생산 확대에 따른 문제가 본격화됐다. 현대자동차는 최근 10여 년간 국내에 신규 투자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 2006년 65%에 달하던 국내 생산 비중이 2015년 38%로 줄었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하노이 지역에 11만 명을 고용하는 휴대전화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또 글로벌 경제로의 편입이 가속화되면서 세계 경제의 위기가 국내로 전이될 가능성 또한 전보다 높아졌다. 글로벌화는 안정을 기초로 하는 노사관계와 노동체제의 변화를 강요하는 요인이 되고 있으며, 결국 잠재적 조합원 감소와 탈조합화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산업구조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노조 확산의 주력은 제조업 근로자였다. 노조의 조직력이 가장 왕성했던 시점은 제조업의 산업 비중이 압도적이던 시절이었다. 반면 서비스업은 그 특성상 대부분의 사업장이 원거리에 분산돼 있다. 사업장별 근로자 수가 적고 무엇보다 근로자별 구성 또한 매우 다양하다.

개별 근로자의 이해관계가 다양한 경우에는 조정·통합을 조건으로 하는 노조의 특성상 조직화가 어렵다. 조직화되는 경우에도 지속을 담보하기 쉽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산업구조는 급격하게 변화됐는데, 제조업 비중이 현저히 축소된 반면 서비스업 비중은 압도적으로 성장했다. 2016년 기준 전 산업에서 차지하는 제조업(광공업 포함) 취업자 비중은 17.2%, 서비스업의 비중은 77.9%에 달한다.

노조 이익 극대화 따라 양극화 심화

이 같은 노동시장 자유화의 결과 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노조의 행동은 근본적으로 변했다. 첫째, 노조는 현재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고용 안정에 대한 보장이 사라진 상황에서 미래의 어음을 받고 현금을 양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둘째, 97년 3월 입법화되고 2011년 본격 시행된 복수노조 제도가 이 같은 변화를 촉진했다. 조직화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노조의 입장에서 조합원의 배타적 이익 추구, 단기적 이익 극대화 등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셋째,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격차가 벌어졌다. 87년 체제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하청 제도를 매개로 성장의 과실을 공유했다. 그러나 97년 이후 이 같은 구조는 대기업의 위기관리 비용을 전가하는 도구로 변모했고, 그 결과 중소기업의 일자리는 폐허가 됐다. 대기업 노조는 자신들의 임금을 위해 중소 하청기업에 위기관리 비용을 이전시키는 전략에 앞장섰다.

이제 한국 노동시장은 자유주의 체제로 전환됐다. 노조의 조직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10.3%까지 하락했다. 노조가 임금과 근로조건을 시장에서 분리해 노동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고 할 때 탈노조화로 노동자 간 시장경쟁은 강화됐다. 노조는 정규직 조합원들의 권리와 이해를 배타적으로 보호하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단체교섭 전략으로 조직 부문과 미조직 부문 간 단절과 격차는 점차 심화됐다. 소수의 조직화된 사업장의 임금·근로조건은 강화된 반면 다수의 미조직 일자리는 고용 환경이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고용노동부의 2015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300인 이상 대기업 근로자(노조 조직률 62.9%)의 월 임금총액은 493만9000원인 데 반해 300인 미만 중소 사업체 종사자의 월급은 240만7000원으로 대기업 대비 48.7% 수준이다. 한국 임금근로자의 86.9%가 300인 미만 사업체에 종사하는 점을 고려하면 노동시장 양극화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같은 역사적 조건을 고려할 때 한국 노동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력한 방법은 위계적 하청 구조를 연대임금과 복지순환의 단위로 설정하는 일이다. 한국의 경우 산업별 교섭구조에 기반한 임금 조정과 연대임금의 경험이 없고, 앞으로도 이와 같은 해법은 적용이 어렵다. 따라서 대기업의 경영성과가 하청으로 수혈되고 하청 근로자의 생산성이 대기업 제품의 경쟁력 기반이 되도록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 다음으로 해야 할 것은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저임금 근로자의 생활안정을 도모하고 ‘좀비 상태’에 있는 한계기업을 정리하는 일이다. 현재 다수의 중소기업이 임금 인상은 고사하고 경영의 단순재생산마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경우 한계 중소기업의 도산이 발생할 수 있고 이로 인한 실업을 국가가 수용하는 일이 불가피하다. 이를 위해 현재 10.3%에 불과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1%까지 올려야 한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soonwon@gmail.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