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000번 넘는 장마 버텨낸 돌다리 있다는데…폭우 내린 진천 농다리 가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굴티마을 세금천에 놓여진 농다리. 고려 초에 놓인 이 다리는 1000년의 세월에도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 진천군]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굴티마을 세금천에 놓여진 농다리. 고려 초에 놓인 이 다리는 1000년의 세월에도 온전한 형태를유지하고 있다.[사진 진천군]

고려 초기에 놓인 뒤 1000년의 세월을 꿋꿋이 버텨온 돌다리가 있다.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굴티마을 앞 세금천에 가면 지네가 물을 건너는 형상의 다리를 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돌무더기를 쌓은 징검다리에 길쭉한 덮개돌을 얹은 모습이다.

고려 초 건설된 농다리, 진천 굴티마을 세금천에 1000년 넘게 자리지켜 #물 저항력 덜받는 유선형으로 설계…장맛비 내리면 물에 잠기는 잠수교 #돌 뿌리 맞물리며 고정, 교각 몸통으로 물 흘러 저항력 줄인 선조들 지혜 #현대 들어와 장마철 건축폐자재, 쓰레기 내려와 물흐름 방해하기도

투박하게 보이는 이 다리는 폭우가 내리는 장마철이나 홍수에도 끄떡없이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예부터 굴티마을 사람들은 이 돌다리를 ‘농교(籠橋)’ 또는 ‘농다리’라 부른다.

지난 4일 오후 굴티마을 세금천을 찾았다. 이날 새벽부터 진천 지역에 57.5㎜의 장맛비가 쏟아지면서 강물이 넘실거렸다. 황토빛을 띠는 거센 물살 사이로 상판을 겨우 드러낸 농다리가 세금천을 가로질러 있었다. 사람으로 따지면 턱밑까지 물에 잠긴 셈이다. 강폭은 물이 불어나 100m 정도였다.

지난 4일 폭우가 내리면서 세금천 물이 불어나 농다리가 상판을 제외하고 물에 잠겼다. 진천=최종권 기자

지난 4일 폭우가 내리면서 세금천 물이 불어나 농다리가 상판을 제외하고 물에 잠겼다. 진천=최종권 기자

물은 다리를 밀어내고, 다리는 밀려오는 강물을 버텨내는 한바탕 싸움처럼 보였다.농다리에 걸친 강물은 교각 사이 사이를 빠져나갔다. 교각 앞 부분으로 물이 빨려 들어가는 듯 흐르더니 꽁무니에 가서는 부채꼴 모양의 물보라를 일으키며 하류로 흘렀다. 상판의 지지대 역할을 하는 교각 몸통에서도 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유선순(50) 농다리전시관 해설사는 “농다리 교각은 유선형으로 돌을 겹겹이 쌓아 올린 형태를 갖고 있다”며 “강물 흐름에 영향을 덜 받도록 한 것인데 교각 돌틈 사이사이로 물이 흘러나가도록 설계돼 마찰력을 더 감소시킨다. 이는 소쿠리 구멍 사이로 물이 빠지는 원리로 이해하면 쉽다”고 말했다.

세금천 물과 맞닿은 농다리 교각 사이로 강물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유선형으로 설계돼 저항을 감소시킨다. 농다리가 1000년의 세월을 견뎌낸데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조상들의 지혜가 숨어있다. 진천=최종권 기자

세금천 물과 맞닿은 농다리 교각 사이로 강물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유선형으로 설계돼 저항을 감소시킨다. 농다리가 1000년의 세월을 견뎌낸데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조상들의 지혜가 숨어있다. 진천=최종권 기자

유 해설사의 말대로 농다리는 돌들이 ‘대나무로 짠 바구니(대바구니·籠)’처럼 얽히고설켜 있었다. 작은 돌과 큰 돌, 넙적한 돌과 가는 돌이 바구니의 날실과 씨실처럼 견고하게 잡고있었다.

이 다리는 1976년 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됐다. 93.6m 길이에 높이는 1.2m 정도다. 교각 너비는 3.6m 안팎이다. 다리는 모두 28칸으로 만들어졌다. 모든 돌은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을 사용한다.

다리 축조 시기는 고려 초로 추정된다. 32년 발간된 『상산지』에는 “농교는 세금천과 가리천이 합류하는 굴치(屈峙)에 있는 다리이며 고려초 임씨의 선조인 임 장군이 처음 건축한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여기서 언급한 임 장군은 고려 2대 왕인 혜종(943∼945년) 때 병부령을 지낸 진천지역 호족인 임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굴치는 굴티마을의 옛 이름이다. 1930년대 발간된 『조선환여승람』에는 “이미 천년을 지나 떨쳐진 명성은 스물 여덟 칸에 이어진 조화를 통달하였다”고 농다리를 소개하고 있다.

농다리는 세금천을 건너는 지네 모양처럼 보인다. 모두 28칸으로 교각과 상판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모아 만들었다. [사진 진천군]

농다리는 세금천을 건너는 지네 모양처럼 보인다. 모두 28칸으로 교각과 상판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모아 만들었다. [사진 진천군]

농다리가 1000년 넘게 옛 모습을 유지한데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지혜와 과학적 원리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다리는 세금천 변에 있는 사력 암질의 붉은색 돌을 모아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 올려 교각을 만든 뒤 길이 1.3m 크기의 장대석을 얹어 완성한다. 교각에 들어간 돌은 돌 뿌리가 서로 엇물려지도록 쌓고 틈새는 작은 돌로 메웠다.

교각 양쪽을 유선형으로 만들어 구조적으로 흐르는 물의 압력에 저항하는 형태를 취했다. 교각 상단으로 올라갈수록 폭과 두께를 좁혀 물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장마 때는 물이 다리를 넘쳐 흐르도록 교각 높이를 세금천 수위를 고려해 정했다. 다리의 중심부는 하류 쪽으로 휘어져 세금천의 빠른 유속을 다리 전체에 적절히 분배되도록 했다.

충북 진천군은 2001년부터 매년 여름 농다리 일대에서 '농다리여름축제'를 연다. 축제기간 상여를 메고 다리를 건너는 옛 모습을 재현한다. [중앙포토]

충북 진천군은 2001년부터 매년 여름 농다리 일대에서'농다리여름축제'를 연다. 축제기간 상여를 메고 다리를 건너는 옛 모습을 재현한다. [중앙포토]

임영은(55) 농다리지킴이 회장은 “장마 때 상판과 교각 1~2개가 유실돼 복구한 적은 있지만 전체가 휩쓸려 나가거나 무너진 적은 없다”며 “건축 폐자재와 자동차 타이어, 쓰레기 등이 장마철에 하류로 내려와 교각에 걸리거나 물 흐름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이어 “농다리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재해를 이겨내고자 했던 조상들의 지혜가 스며있는 유산”이라며 “농다리가 올해 장마도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덧 붙였다.
진천=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