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선 2035

한국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기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이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 현 사회 2부 기자

이 현 사회 2부 기자

“부럽네요, 저는 휴가가 일주일뿐이라서….” 휴가지에서 외국인과 대화할 때마다 나는 이 말을 반복한다. 지난해 포르투갈에서 만난 여행객 패미에게도 똑같이 말했다. 그는 이스탄불에서 나고 자란 터키 사람인데, 터키 기업에 다니다 그만두고 공부를 더 해서 지금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파나소닉 자동차 시스템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패미는 친구와 차를 타고 보름 정도 돌아다닐 거라며 “더 쉴 수도 있지만 지루할 것 같아 휴가를 나눠서 쓴다”고 했다. 이번에는 내 차례, 흔한 한국 직장인의 근무환경을 읊었다. 1년 통틀어 연차는 2주 남짓, 주말에도 종종 출근하고 밤 10시 넘어까지 회식하는 것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라고 말해 줬다. 이것저것 묻던 패미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정도 근무환경이라면 EU에 난민 신청을 하는 건 어때?”

난민이라니! 한국에서 이 정도면, 1년에 한 번 해외여행 다닐 정도 월급 받는 정규직 회사원이면 ‘배부른 축’에 속한다고 설명하고 싶었지만, 영어가 짧아 참았다. 지난 2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대기업 비정규직 비율은 38.5%다. 청년 일자리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한다. 지난해 2030 실업자 수는 59만2000명으로 2001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20대 실업률은 9.8%로, 역시 2000년 이후 가장 높았다. 비정규직을 줄인다면서, 무늬만 정규직에 임금 낮고 노동시간은 긴 ‘중규직’도 많아지고 있다.

지난주 개봉한 영화 ‘옥자’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미란도 그룹 직원 김군이 수퍼 돼지 옥자를 태운 트럭을 운전한다. 보조석에 탄 중년의 박사가 못 미더운 표정으로 “1종 면허는 있는 거냐”며 꼰대 같은 질문을 해도 대꾸가 없다. 잠시 후 옥자를 구출하기 위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옥자를 쫓아가자는 ‘꼰대’에게 “제가 1종 면허는 있는데 4대 보험이 없어요”라고 하며 차 키를 창밖으로 던진다.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회사가 망한 거지, 전 상관없어요”라고 인터뷰하는 모습은 더 통쾌하다.

“요즘 비정규직이 많다는데, 기자 일로 밥벌이가 되나요?” 얼마 전 강연을 갔던 고등학교에서 들은 질문이다. “그 회사는 근무환경이 어떠냐”는 질문도 나왔다. 고등학생이 벌써 이런 걱정을 하는 게 귀여워 다른 기자에게 일화를 전했더니 자기도 고등학교에 강의를 갈 때마다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10대부터 밥벌이를 고민하는 시대다. “유럽 애들이 우리 난민 수준이래” 농담처럼 써두기엔 힘든 청춘이 아직 너무 많다.

이 현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