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국양제 동상이몽, 시진핑 ‘일국’에 홍콩은 ‘양제’에 초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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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호 03면

홍콩 주권 중국 반환 20주년

홍콩 반환 20주년이 되는 1일 홍콩 도심에서 6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7·1 대행진’이 열렸다. 시위 참가자들은 “일국양제를 수호하자”는 구호를 외쳤다. [AP=연합뉴스]

홍콩 반환 20주년이 되는 1일 홍콩 도심에서 6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7·1 대행진’이 열렸다. 시위 참가자들은 “일국양제를 수호하자”는 구호를 외쳤다. [AP=연합뉴스]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지 20년이 됐지만 여전히 문제는 일국양제(一國兩制)다. 사회주의 중국이 홍콩의 자본주의 체제를 보장한다는 이 약속이 반환 20주년을 맞은 지금까지도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기념식 참석한 시진핑 주석 #“중앙권력 도전 허용할 수 없어” #시 주석 떠나자 6만 명 도심 집회 #“벌써 사라진 일국양제 지키자” #언론·출판·표현의 자유 보장 요구 #홍콩의 중국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시민들 반중 의식 최고 수준 달해

집권 후 처음으로 홍콩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흔들림 없이 일국양제를 견지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반면 홍콩 야당과 민주화 운동 단체들은 “(날로 유명무실해지는) 일국양제를 지키자”는 구호를 외치며 홍콩 도심을 가득 메웠다. 반환 20주년 기념일인 1일 일어난 일이다.

시 주석은 이날 오전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조국 회귀’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중국에서는 1997년 영국이 홍콩의 주권을 중국에 반환한 것을 조국의 품에 돌아왔다는 의미에서 ‘회귀’라고 표현한다.

시 주석은 30여 분간 이어진 연설의 대부분을 일국양제에 대한 평가와 소신을 밝히는 데 할애했다. 일국양제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홍콩에 대해서는 반환 이전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한다는 의미다. 중국이 약속한 기간은 97년 주권 반환 이후 50년간이다.

시 주석은 “일국양제는 중국이 창조해낸 위대한 쾌거”이며 “전 세계가 성공을 인정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국양제 아래에서 홍콩 시민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커다란 민주적 권리와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며 “홍콩은 일국양제 아래에서 경제적으로도 세계의 금융·무역 허브로서 경쟁력을 갖고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 20년간 홍콩이 비교적 안정을 보인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 인식이다. 97년 반환 전에는 한 해 6만 명의 홍콩인이 해외 이민을 가는 등 불안감이 고조됐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반환 이후 20년 동안 홍콩에서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시 주석, 중국에 대한 귀속의식·일체감 강조

변함없는 일국양제의 견지를 약속했지만 시 주석은 양제가 아닌 일국에 방점을 뒀다. 그는 일국과 양제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어디까지나 일국이 근본이란 인식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일국이란 뿌리가 깊지 않으면 잎이 무성해지지 않으며, 일국이란 바탕이 견고해야 가지가 풍성해진다”고 말했다. “동포 여러분”이란 말로 연설을 시작한 그는 “홍콩의 운명은 조국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말하는 등 연설 곳곳에서 홍콩인의 중국에 대한 귀속의식과 일체감을 강조했다.

그는 일국을 부정하는 움직임에 대한 단호한 대처 방침을 밝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 주석은 “국가 주권을 해치고 중앙의 권력에 도전하거나 중국 본토에 대한 침투·파괴 활동은 모두 마지노선을 건드리는 것으로 절대 허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2014년 민주화를 요구한 ‘우산혁명’ 시위 이후 대두하기 시작한 홍콩 독립론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시 주석은 기념식 참석에 이어 홍콩과 광둥성 주하이(珠海)를 거쳐 마카오를 잇는 강주아오(港珠澳) 대교 건설 현장을 방문한 뒤 베이징으로 돌아감으로써 사흘간의 홍콩 방문 일정을 마무리했다.

시 주석이 홍콩을 떠난 직후인 오후 3시, 이번엔 홍콩 도심에 집결한 시위 군중이 일국양제를 외치기 시작했다. 시민단체 민간인권진선(民間人權陣線) 등이 주도한 집회 참가자들은 빅토리아공원을 출발, 간선도로를 따라 홍콩 정부청사까지 행진에 나섰다. 홍콩 반환 기념일인 7월 1일에 해마다 벌어지는 ‘7·1 대행진’이었다. 주최 측은 올해 시위참가자가 6만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행진 참가자들의 손엔 ‘일국양제를 수호하자’라고 적힌 전단과 포스터가 들려 있었다. 같은 내용의 구호를 선창자를 따라 목청껏 외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일국양제에 대한 주장 이외에 “(간암 말기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를 즉각 석방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또 이날 자로 물러난 전임 행정장관 렁춘잉(梁振英)을 부패 인사로 규정하며 “구속하라”고 촉구하는 구호도 등장했다.

‘범민주파’라 불리는 홍콩 민주단체와 야당은 시 주석의 생각과는 달리 일국양제가 날로 퇴색되고 있다고 본다. 2014년 민주화 요구 시위였던 우산혁명의 주역인 조슈아 웡(黃之鋒·21) 데모시스토(香港衆志)당 비서장은 “일국양제는 벌써 사라지고 1국1.5제가 남았다”고 주장한다. 일국양제를 약속한 1984년의 중·영 공동선언이나 지금 시행 중인 홍콩기본법에 따르면 홍콩에선 주권 이양 이전과 같이 언론·출판·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홍콩 당국은 입법·사법·행정에서 고도의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데 이에 역행하는 일들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12월 일어난 퉁러완서점 사건이 대표적이다. 중국 공산당을 비판하는 내용의 정치서적을 출판·판매해 오던 이 회사 관계자 5명이 연이어 실종됐다. 이들은 중국 공안 당국에 강제 연행돼 홍콩이 아닌 중국 본토에서 구금된 채 조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출판의 자유가 보장된 홍콩에선 정부 비판 내용 때문에 홍콩 경찰에 끌려 가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일 캐리 람 홍콩 새 행정장관의 취임식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AP=연합뉴스]

1일 캐리 람 홍콩 새 행정장관의 취임식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AP=연합뉴스]

“중국 공산당 연락 기관이 배후의 정부 역할”

비단 이 사건뿐 아니라 홍콩에선 중국 중앙정부 비판 등 언론의 자유가 날이 갈수록 침해받고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홍콩 주재 경력이 긴 서방 외교관은 “예전에는 대학교수를 만나면 자유롭게 홍콩 정부는 물론 중국 정부까지 신랄하게 비판했는데 지금은 주위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아낀다”고 말했다. 홍콩의 반정부 인사들은 “법률로 보장된 ‘고도의 자치’도 점점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며 “홍콩에 주재하는 중국 공산당의 연락기관이 점점 보이지 않는 배후의 정부 역할을 하며 홍콩 정부를 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홍콩 시민단체와 야당이 요구하는 일국양제의 방점은 양제에 찍힌다. 일국에 방점을 두는 시 주석 인식과의 사이엔 메우기 힘든 간극이 있다. 시 주석이 “일국의식을 키우자”고 강조했지만 최신 여론조사 결과들에 따르면 홍콩인들의 반중(反中)감정은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해가 갈수록 많은 중국인이 홍콩으로 밀려오고 중국과의 일체화가 가속화되면서 홍콩의 정체성이 사라진다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이번 홍콩 방문에 거는 기대가 높았다. 성공적인 홍콩 회귀와 발전이야말로 그가 꿈꾸는 중국의 영광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2012년 11월 총서기에 오르며 집권한 그는 “근대화에 뒤처져 서구열강에 영토마저 떼줘야 했던 고난을 극복하고 중국의 꿈(중국몽)을 실현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그런 점에서 볼 때 1842년 아편전쟁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영국에 할양했던 홍콩을 되찾은 것이야말로 시 주석이 내세우는 중화민족 부흥의 시발점으로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시 주석이 지난달 29일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을 사열한 것이나 오는 7일부터 중국 항공모함인 랴오닝함이 주권 반환 20주년을 기념해 홍콩에 첫 기항하는 것도 홍콩과 중국의 일체감을 고취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시 주석의 집권 기간 내내 홍콩은 크고 작은 골칫거리를 안겨 왔다. 2014년 50만 명 이상의 학생·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홍콩 중심가 도로를 2개월 이상 점거하고 정부청사를 봉쇄한 우산혁명 시위가 대표적이다. 그 이후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정당이 출현해 입법회의에 진출하는 등 과거에 없던 현상들이 일어났다.

이번 사흘간의 시 주석 방문 기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홍콩 당국은 전체 경찰 인원 3만 명 가운데 1만1000명을 동원해 삼엄한 경계를 폈으나 범민주파 단체원들은 곳곳에서 기습 시위를 벌였다. 우산혁명 주역 조슈아 웡은 시 주석 방문 기간 중 두 차례 경찰에 연행됐다. 지난달 28일 동료 20여 명과 함께 주권 반환의 상징물인 꽃 모양의 골든 바우히니아상을 점거해 시위를 벌이다 일시 구금됐던 그는 반환 20주년 당일인 1일 오전에도 기념식장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에 의해 격리됐다. 이 과정에서 친중단체와 반중단체 간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7·1 대행진이 끝날 무렵 홍콩 섬과 카오룬 반도 사이의 빅토리아만에서 불꽃놀이 축제가 펼쳐졌다. 이 역시 해마다 벌어지는 이벤트지만 20주년 기념일인 만큼 올해는 예년보다 규모가 더 컸다. 4만 발의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으며 화려한 홍콩의 야경과 어우러졌다. 병풍 같은 홍콩의 마천루를 배경으로 축하 문자가 밤하늘에 아로새겨졌다. 날로 가속화되고 있다는 홍콩의 중국화 현상을 이 글자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밤하늘에 홍콩인들이 쓰는 번체(繁剃) 한자가 아니라 중국 정부가 공식 문자로 지정한 간체(簡體) 한자였다.

홍콩=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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