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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서열 3위, 조지 펠 추기경 '아동 성범죄' 혐의로 기소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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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재무원장이자 호주 가톨릭 교단의 최고위 성직자인 조지 펠(76) 추기경이 아동 성범죄 혐의로 기소됐다. 바티칸 서열 3위 성직자로, 그간 성범죄 혐의로 기소된 교황청 관리 중 최고위직이다.

호주 출신 펠 추기경, 성범죄 기소 관련 최고위직 #현 교황청 재무원장으로 프란치스코 교황 최측근 #"아동 성범죄 절대 안 된다"던 교황 명성에도 먹칠

시드니모닝헤럴드 등 현지 언론은 호주 빅토리아주 경찰이 29일(현지시간) 펠 추기경을 강간 1건을 포함해 적어도 3건의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했다고 보도했다.

조지 펠 추기경. [AP=연합뉴스]

조지 펠 추기경. [AP=연합뉴스]

셰인 패튼 빅토리아주 경찰청 차장은 기자회견에서 “경찰은 조지 펠 추기경을 ‘역사적인’ 성범죄 혐의로 기소했다. 고소인이 다수”라면서도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그는 또 “펠 추기경에 대한 어떤 주장도 아직 명백히 법정에서 다뤄진 적은 없다. 다른 피고인들과 마찬가지로 펠 추기경 또한 정당한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바티칸에 체류 중인 펠 추기경의 첫 공판은 다음달 18일 멜버른 치안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시드니모닝헤럴드는 “호주와 바티칸은 범인 인도 협정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펠 추기경은 호주로 돌아오지 않고 기소를 피할 수도 있겠지만, 혐의를 벗기 위해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또 “혐의를 밝히는 과정에서 추기경에 사퇴 압박이 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호주 연방 정부가 가톨릭 성직자들의 아동 성범죄를 조사하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린 건 2013년이다. 조직적으로 은폐돼왔던 이 범죄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위원회가 호주 전역에서 광범위한 조사를 펼친 결과 1980년부터 2015년 사이 ‘어린 시절 가톨릭 사제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신고한 이가 4444명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올 초 밝혀졌다. 피해자의 95%는 남자아이였고, 학대를 받을 당시 평균 나이는 10~11세였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 중 1880명의 혐의가 확인됐을 정도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일어난 일이었다.

빅토리아주를 기반으로 사제 생활을 시작해 시드니 대주교까지 올랐던 펠 추기경도 지난해 초 수사 대상에 올랐다. ‘사제들의 성범죄를 은폐하고 피해자들의 호소를 들었음에도 묵살했다’는 혐의였다. 당시 추기경은 경찰 수사에 계속 협력할 것을 밝히면서도 피해자들의 주장을 부인했다. 그러다 몇 개월 후, 펠 추기경 자신이 아동 성범죄에 가담한 혐의까지 추가된 것이다.

현재 펠 추기경은 모든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지만, 바티칸의 명성에는 금이 갈 것으로 보인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측근이자 2014년부터 바티칸에서 재무원장으로 재직했다. 교황청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갖고 있는 인물이다.
CNN 등 외신은 “이번 발표는 호주뿐 아니라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보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도 직접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 교황은 취임 후 “사제들의 성범죄는 사탄 숭배 만큼 끔찍한 신성 모독”이라고 분노하며 가톨릭 성범죄를 반드시 근절하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지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2015년 미국을 방문했을 땐 피해자들을 만나 위로하고, 미사에서 “하느님이 울고 계신다. 어린이 대상 성범죄는 더이상 계속돼선 안 된다"고 규탄하며 ‘성범죄 무관용 정책’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조지 펠은 누구인가=1941년 광산 관리자의 아들로 태어난 펠 추기경은 운동에 소질이 있어 1959년 리치몬드 축구 클럽과 계약까지 했지만 “하느님이 나를 원한다고 확신한다”며 사제의 길로 들어선 후, 사제로서 승승장구했다. 특히 사제 독신주의와 동성애 반대, 사후 피임약 반대 등을 강력하게 주장해 ‘정통 보수 사제’로 이름을 떨쳤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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