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정규직 전환 몰이, 또다른 정치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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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박병종콜버스 대표

박병종콜버스 대표

우리 회사는 모두가 정규직이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필요성을 이해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근로의 형태와 기간이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최근 정부가 기업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압박하는 모양이다. 기업이 법대로 하는데도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강제 출연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과정에서 정경유착이 싹튼다.

정치적 협박으로 기업을 옥죄는 것은 한국 정치가 성숙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기업이 잘못했으면 처벌할 일이다. 잘못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징벌하지 않았다면 사법부와 행정부의 직무유기다. 정의롭지 못한 제도를 방치했다면 입법부의 배임이다. 기업은 환경에 적응하며 이윤을 추구할 뿐 정의를 판단하지 않는다. 요즘 정부의 행태는 물고기한테 걷지 않는다고 훈계하며 물 밖으로 끌어내려는 꼴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정규직이 과도하게 보호받는다는 사실이다. 정년 보장을 강제하는 법 위에 호봉제 정규직이 생겨났다. 과거 급격한 경제 성장기에 정부가 복지 기능을 기업에 떠넘기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경제 성장이 둔화하면서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기업의 생존을 위해선 탄력적인 고용 제도가 필요하고 호봉제 정규직의 연봉제 계약직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현재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는 호봉제 정규 직제가 연봉제 계약 직제로 전환하는 과도기적 부작용이다.

정규직은 애초에 비정상적인 고용방식이다. 일본 등 급성장한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 특징적으로 발견된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민간 부문에서 이런 형태의 고용구조가 흔치 않은 것은 이 방식이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원은 언제나 자유롭게 회사를 떠날 수 있는데 왜 기업은 직원을 자유롭게 해고하지 못하는가. 서구권에서는 기업과 직원을 자유로운 계약의 주체로 보는 반면 한국에서는 기업을 가족 부양하는 가장처럼 여긴다.

어느 나라나 고용 보호를 위한 장치가 있으나 한국처럼 경직적이지는 않다. 한국은 저성과자 해고 규정 자체가 없다. 기업이 정규직 채용을 꺼리는 이유다. 고용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되 정부가 고용보험을 강화하는 덴마크의 ‘유연안정성’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 사태 이후 정부와 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암묵적 동의 하에 이 제도를 유지해 왔다.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않고 그들 사이에 계급이 생길 때 필연적으로 착취가 출현한다. 비정규직 직원들은 정의롭지 못한 사회구조를 무너뜨릴 생각보다 정규직 ‘이너써클’ 안에 들어가길 원했다.

현 상황에서 비정규직 고용은 합법적일 뿐 아니라 합리적이다. 오히려 정년 보장을 강제하는 정규직을 타파하고 연봉계약직을 일반화 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모두가 연봉계약직으로 전환된다면 정규직, 비정규직 구분이 사라지고 능력에 따라 대우받는 사회가 된다.

박병종 콜버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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