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진보 정치권도 당혹스런 민노총 총파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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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30일 총파업 계획에 일침을 놨다. 그는 어제 “지금은 총파업 할 때가 아니라 일자리 혁명과 사회 대개혁을 위해 힘든 길을 가는 대통령을 도울 때”라고 말했다. 진보정권도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처럼 노조의 대규모 집단행동에 각을 세우는 모습이 이채롭다.

한·미 정상회담 기간에 민노총 총파업 #문재인 정부 노력, 재계 양보에 찬물 #노동단체 일탈엔 정부 대응 분명해야

민주사회의 파업은 근로자 본연의 권리다. 하지만 진보정권을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의 실세마저 총파업에 반대하는 것을 보면 그 시기와 맥락에 적잖은 문제가 있음을 가늠케 한다.

우선 하필이면 왜 한·미 정상회담 기간인가 하는 점이다. 사드와 북핵 문제가 실타래처럼 얽힌 가운데 국운을 좌우할 이번 회담에 국민적 지혜와 성원을 모아 보내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총파업부터 시작한다면 국민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민주노총의 현실인식이 재계는 물론이고 진보정권과도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새 정부의 굵직굵직한 노동개혁 정책들, 가령 정규직 전환과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근로시간 단축 등에 대해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한 사용자단체들은 줄곧 과속을 경계해 왔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오히려 개혁 진도가 지지부진하다면서 속도전을 재촉하고 있다. 구속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최근 옥중 서신에서 “재벌과 권력기관, 기득권 집단이 코너에 몰린 지금이야말로 칭기즈칸의 속도전으로 개혁을 밀어붙일 적기인데 (문재인 정부가) 주춤하고 있다”며 대규모 상경투쟁을 독려했다.

"1년만 기다려 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이른바 ‘사회적 총파업’을 강행하고 나섰다. 극단적 분위기 속에서 여기저기 무리하고 거친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다. 한국GM 노조는 회사가 3년간 2조원 가까운 손실을 봤는데도 불구하고 파업을 준비 중이다. 법외노조인 전교조는 이번 총파업에 참여하기 위해 단축수업까지 불사하기로 해 학습권 침해 비난을 사고 있다.

총파업과 주변 정황들은 마치 민주노총이 문재인 정부 탄생에 기여한 빚을 받겠다는 청구서 같다. 우리 세상이 왔으니 마음대로 하겠다는 완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호혜적·합리적 노사관계를 바라는 대다수 국민의 민주노총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새 정부 노사정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지난달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이 노사정책에 쓴소리를 했다가 새 정부의 실세들로부터 “경총부터 반성하라”고 몰매를 맞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저임금 1만원과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볼멘소리를 하자 일자리위원회는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노동계의 무리한 행태에 대해서도 과감히 지적할 수 있어야 균형 잡힌 정부다. 손벽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새 정부 들어서니 세상이 바뀌었다는 걸 국민이 느끼려면 노동계도 상응하는 양보와 배려, 연대가 있어야 한다”는 이용섭 부위원장의 말은 백번 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