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미세먼지 대책, 정확한 진단부터 시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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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종수서울대 공과대학 기술경영경제정책협동과정 교수

이종수서울대 공과대학 기술경영경제정책협동과정 교수

그동안 정부는 미세먼지 발생 원인 규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관성 없는 메시지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지난해 6월 미세먼지 특별대책에서 수도권의 초미세먼지 발생에 대해 경유차(29%)를 주 배출원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환경부 국정감사 자료에서는 시멘트·연탄 공장 등에서 발생하는 비산먼지(38%)를 수도권 미세먼지의 주원인으로 꼽았다. 미세먼지에 대한 과학적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국민 관심이 쏠리자 급하게 특별대책을 마련해 생긴 일이었다.

진단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내놓은 대책이 실효성이 있을 리 없다. 정부는 ‘미세먼지 특별대책 세부이행계획’에서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2020년까지 총 5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예산의 약 70%를 전기차 보급 사업에 배분했다. 전기자동차는 주행 시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전력 발전은 석탄 등에 의존하기 때문에 ‘석탄발전 자동차’인 셈이다. 신재생 에너지 비중이 높은 일부 유럽 국가와는 상황이 다르다.

경유세 인상을 골자로 한 수송용 유류 가격 조정 및 경유차 감축 방안도 실효성 있는 미세먼지 대책으로는 볼 수 없다. 경유차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의 대부분은 노후 화물차와 건설기계에서 나온다. 최신 경유 승용차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는 휘발유나 천연액화가스(LPG)와 유사한 수준이다. 노후 화물차는 경유세를 인상하더라도 유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 노후 화물차 소유주들이 이를 새 차량으로 바꾸거나 유류 사용을 줄일 인센티브가 적다. 경유 승용차 사용자에게 세금을 징수해 노후 화물차 운전자에게 지급하는 불공평한 대책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미세먼지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주요 미세먼지 배출원인 대형 화물차·건설기계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 배출을 잡아야 한다. 노후 대형 화물차와 건설기계의 조기 폐차를 유도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개정·정비하고, 예산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중국과 ‘미세먼지 저감협정’ 체결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민관 합동 감독기구를 운영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결국 미세먼지는 단편적 대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석탄발전 의존도 축소와 함께 ▶발전소에 최신 집진설비를 설치하고 ▶노후 경유차량의 조기 폐차를 유도하며 ▶미세먼지 측정시스템을 전면 개편하는 등의 방안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

새 정부는 석탄화력 발전소 축소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은 6월 한달간 노후 화력발전소의 일시적 셧다운을 지시했다. 환경과 국민의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미세먼지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확한 진단에 따른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종수 서울대 공과전문대학원 기술·경영경제정책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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