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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과 표정으로 부르는 노래”…훈남 유튜버, 청각장애인 최형문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부터 유튜브에 '수화 노래'를 올리고 있는 최형문씨. [유튜브 캡처]

지난해부터 유튜브에 '수화 노래'를 올리고 있는 최형문씨. [유튜브 캡처]

한 20대 남성이 최신곡을 부른다. 입 모양은 분명한데 목소리는 안 들린다. 대신 표정과 손짓이 더해졌다. ”봄이 그렇게 좋으냐“며 커플들을 비아냥대는 노래(10㎝ ‘봄이 좋냐’)를 부를 땐 한껏 불만스런 표정으로, ”네가 제일 예쁘다“며 투정부리는 여자친구를 달래는 노래(에디킴 ‘예쁘다니까’)를 부를 땐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노래 가사에 맞춰 그의 손은 쉴새없이 움직인다. 손으로 전하는 말, 수화(手話)다.

이 남성은 최형문(27)씨다. 최씨는 지난해부터 유튜브에 ‘데프문(DEAFMOON)’이라는 아이디로 ‘수화 노래’ 영상을 올렸다. 아직 구독자는 1900여 명 정도지만, 그의 영상은 서서히 입소문을 타는 중이다. 가수 에디킴의 ‘예쁘다니까’를 따라 부른 수화 영상은 ”외모도 훈훈한데 노래까지 달콤하다“, ”표현력이 정말 좋다“ 같은 반응을 업고 조회 수 4만 건에 육박했다.

지난해부터 유튜브에 '수화 노래'을 올리고 있는 최형문씨. 그는 7살 때 열병을 심하게 앓은 뒤 청각장애인이 됐다. [사진 최형문씨]

지난해부터 유튜브에 '수화 노래'을 올리고 있는 최형문씨. 그는 7살 때 열병을 심하게 앓은 뒤 청각장애인이 됐다. [사진 최형문씨]

최씨와의 인터뷰는 지난 20일 시작됐다. 문자와 이메일 등으로 진행된 인터뷰는 25일까지 이어졌다. 최씨는 7살 때 열병을 심하게 앓은 이후 농인(聾人), 즉 청각장애인이 됐다. 장애인으로의 삶은 녹록지 않았지만 최씨는 ‘내가 농인이라고 해서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전 농인을 '수화를 언어로 사용하는 소수 집단'이라고 여깁니다. 농인이라는 호칭에는 장애도, 차별도 없어요. 다만 다른 삶의 방식이 있을 뿐입니다.”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 일반 기업에서 사무직으로 2년 반 동안 일한 최씨의 주위엔 장애인ㆍ비장애인 가릴 것 없이 친구들이 많다. 그는 “농인 친구와 만날 때는 수화로 말하고, 비장애인 친구와는 구화(입으로 말하는 것)나 필담으로 대화하면 된다”고 말했다.

최씨는 미국의 농인 연예인 영상을 본 이후 ‘수화 노래’를 시작했다. 그는 “표정과 손동작만으로도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다는 걸 그 영상을 보며 처음 깨달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수화 통역사가 ‘수화 노래’를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감정을 전달하는 노래라기 보단 ‘외워서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 이후 최씨는 다른 청각장애인들에게, 나아가 비장애인들에게 노래를 통해 느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겠다는 소망을 품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의 영상을 본 청각장애인들은 “이런 느낌의 노래였다는 걸 인제야 알았다”며 기뻐했다. 촬영부터 편집까지 혼자 하다 보니 밤새 촬영을 하다 쓰러진 적도 있다. 그러나 같은 농인으로서 시청자들의 반응은 특별했다. 최씨는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는데도 마무리 편집을 하려고 노트북을 켰던 기억이 난다”며 필담으로 웃었다.

지난해부터 유튜브에 '수화 노래'를 올리고 있는 최형문씨. [유튜브 캡처]

지난해부터 유튜브에 '수화 노래'를 올리고 있는 최형문씨. [유튜브 캡처]

“노래가 안 들릴 텐데 어떻게 그리 자연스럽게 따라할 수 있나요?” 최씨가 유튜브를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최씨는 “연습만이 살길이다”며 자신의 연습 과정을 설명했다.

“먼저, 구독자들로부터 신청곡을 받아요. 내가 그 곡을 따라할 수 있는지 박자부터 확인합니다. 너무 빠르면 따라가기가 힘들거든요. 할 수 있겠다 싶으면 노래 가사가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요. 이를 이해한 뒤, 표정과 수화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연결할지 고민합니다.” 길어야 5분 남짓인 영상을 완성하기 위해 최씨는 일주일 동안 연습을 한다. 조만간 가장 난이도가 높은 ‘힙합’ 장르에도 도전해보고 싶단다.

최씨는 “유독 한국 사회에서 수화가 언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몇 해 전 미국 여행에서 겪은 일화를 들려줬다.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는데 국제 수화로 ‘데프(deafㆍ농인)’라고 말하니 종업원도 기본적인 국제 수화로 대답해줬어요. 한국에서는 좀처럼 없는 일이었습니다. 미국은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기본 수화를 가르친다고 하더라고요. 이 경험 이후, 전문 수화 강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두 달 전쯤 직장을 그만두고 ‘취업 준비생’이 된 최씨는 최근 본격적으로 수화 강사 공부를 시작했다. 어쩌면 유튜브 활동도 그에겐 공부의 일환이다. 그는 “노래뿐 아니라 좀 더 다양한 주제로 수화 영상을 만들어 볼 계획이다. 영상을 통해 수화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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