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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동결·폐기해도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는 수준에 근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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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호 06면

북핵·미사일 개발 어디까지 왔나

지난달 29일 강원도 원산에서 북한이 정밀 유도 조종 체계를 적용했다고 주장한 스커드 계열 탄도미사일이 시험 발사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강원도 원산에서 북한이 정밀 유도 조종 체계를 적용했다고 주장한 스커드 계열 탄도미사일이 시험 발사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고체 연료 기반의 중거리 미사일인 북극성 2형 시험 발사(작은 원)를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시스]

지난달 21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고체 연료 기반의 중거리 미사일인 북극성 2형 시험 발사(작은 원)를 참관하고 있다.[연합뉴스, 뉴시스]

북한이 지난 3월에 이어 또다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로켓 발사시험을 실시했다고 로이터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폭스뉴스는 “이번에 시험발사한 로켓 엔진은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용 엔진이거나 위성발사용 엔진일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단서도 포착됐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북한의 군수공업부 보고 문건에 따르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 2월 25일 핵·미사일 생산 시설인 ‘92호 공장’을 찾아 “핵무기 개발 생산과 보관 관리는 나라의 생사존망을 좌우하는 비밀 중의 비밀”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언급한 핵무기가 완성품을 의미하는지는 명확지 않으나 ‘보관 관리’라는 문맥에서 보면 핵무기 보유를 추정케 하는 대목이다.

플루토늄탄 9~13, HEU탄 37~47개 #만들 수 있는 핵물질 보유 추정 #지속적 재처리, 고농축우라늄 생산 #탄두 대량생산 체제 구축할 우려 #미사일 발사각도 조절해 한국 겨냥 #투발수단 다양화하는 능력 실험 #“선제 공격당해도 예비탄두로 반격”

심상치 않은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2일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북한이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핵 탑재 탄도미사일을 배치하는 기술을 멀지않은 시기에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추가적인 ICBM 발사시험, 6차 핵실험 가능성에 우려를 표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핵무기 보관 관리는 비밀 중의 비밀”

집권 5년째를 맞은 김정은은 핵 개발에 올인했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국제사회와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시간 벌기와 속도 조절을 한 것과는 달리 마이웨이식 개발이었다. 다섯 차례의 핵실험(2006년 10월 9일~2016년 9월 9일) 중 세 차례가 김정은 집권 이후다. 지난해엔 두 차례(1월 6일, 9월 9일)나 핵실험 버튼을 눌렀다. 4차 핵실험 직후엔 수소폭탄을, 5차 핵실험 때는 “핵탄두의 위력 판정을 위한 핵폭발 시험을 단행했고,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이 말대로라면 미사일에 실을 수준의 핵탄두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있는 핵실험장에서 언제든지 추가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해놓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핵 개발이 진행형이란 주장이다.

북한이 지난 3월 18일 실시한 신형 고출력 로켓엔진 지상 분출 실험 장면. [사진 노동신문]

북한이 지난 3월 18일 실시한 신형 고출력 로켓엔진 지상 분출 실험 장면. [사진 노동신문]

반면 김진무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는 “핵무기 보유국들은 첫 번째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2~7년 사이에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핵무기 제조의 3요소(핵물질, 운반수단, 고폭장치)에서 북한이 질적 성장을 이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HEU) 등 상당량의 핵물질을 확보했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이 됐다”며 “최근 핵탄두를 운반하는 수단인 미사일 수준도 발전하고 있고, 100여 차례의 실험을 거쳐 기폭장치 기술을 확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올 초 국방부가 발간한 『국방백서 2016』에 “북한이 핵탄두, 핵투발 수단(대륙간탄도미사일)을 과시하면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다”며 ‘핵탄두’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만큼 북한 핵의 위협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북핵 위협 본질적으로 다른 국면 도달”

북한은 현재 핵심 인력 200여 명을 포함해 3000여 명의 핵무기 제조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1980년대 말 프랑스 상업위성이 영변 핵시설을 촬영하며 핵 개발 의혹을 제기한 지 30년이 다 돼 간다. 2002년 10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가동을 인정하며 2차 핵위기가 불거진 지도 15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 등 국제사회가 남북 대화나 6자회담을 통해 북핵 개발 저지에 나섰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아마노 유키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도 지난 2일 핵확산금지조약(NPT) 발효 50주년 기념 평가회의 준비 모임에서 “북핵 위협은 본질적으로 다른 국면에 도달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우려는 HEU의 위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 세계 우라늄 매장량이 4000만t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 중 2600만t이 북한에 매장돼 있고 채광할 수 있는 가채량도 400만t이나 된다. 손쉽게 핵물질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HEU를 만들기 위해 파키스탄과 협력해 제작한 원심분리기는 약 600㎡(약 180평) 정도의 부지에 설치할 수 있어 은폐도 쉽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이 플루토늄 핵만 보유했을 때는 수량의 증가 속도가 빠르지 않았고, 우리도 예측할 수 있었다”며 “이런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공장 규모나 전력 소모가 작은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연간 80㎏ 이상(핵무기 4개 분량)의 HEU를 생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영변 핵단지의 5MWe 흑연감속로에서 사용후 재처리한 플루토늄 50여㎏(국방백서)과 자연 상태의 우라늄을 무기급(순도 93~94% 이상)으로 농축한 HEU를 최대 750여㎏가량 보유한 것으로 정보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핵탄두 1개를 만드는 데 플루토늄 4~6㎏, 고농축우라늄 15~20㎏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보 당국의 추정치를 고려하면 북한이 보유한 핵물질로는 플루토늄탄 9~13개, 고농축우라늄탄 37~47개를 만들 수 있는 셈이다. 플루토늄에 비해 비교적 손쉬운 HEU의 위협이 가중되고 있는 셈이다.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 특사 등은 “북한이 2020년까지 100개의 핵무기나 ICBM을 보유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미사일 탑재능력 확인 안 돼 … 두고 봐야”

물론 북한의 이런 주장과 전문가들의 평가에 대한 증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이 주장한 수소폭탄 개발 성공에 대해서도 폭발 위력 등을 고려하면 신빙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핵무기 제조 능력이 최근 고도화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아직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능력이 확인되지 않아 무기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다섯 차례의 핵실험에서 폭발 위력이 점차 커지는 등 진화의 양상은 분명하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핵실험 규모는 1차 때 0.4㏏(1㏏은 TNT 1000t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위력)에서 3㏏→6~7㏏→4~6㏏→10㏏으로 확대됐다. 나가사키나 히로시마에 떨어진 위력의 핵폭탄 제조 능력을 과시한 것으로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수준의 소형화에 근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대목은 지속적인 재처리와 HEU 생산 활동은 단순한 핵물질 보유량 증가를 넘어 탄두의 표준화와 규격화, 즉 대량생산 체제의 구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북한이 700㎞ 안팎이던 스커드-ER의 사거리를 1000㎞로 늘리고, 일본이나 괌을 겨냥해 만든 노동과 무수단 미사일의 발사 각도를 조절해 한국에 떨어뜨리도록 투발수단을 다양화하는 능력을 시험하는 것도 경계 대상이다.

사전탐지가 어려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도 개발 막바지다. 모두 핵탄두 장착을 염두에 둔 미사일들이다. 이춘근 책임연구위원은 “탄두의 표준화는 SLBM인 북극성-1과 육상형인 북극성-2에 동일한 탄두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다수의 예비탄두를 보유함으로써 선제공격을 당해도 살아남은 투발수단으로 반격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시점에서 핵 동결이나 핵 폐기를 하더라도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시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돼 가고 있어 북한의 비핵화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1차 북핵 동결과 경제적 보상→폐기 후 보상이라는 2단계 구상을 밝혔다. 하지만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ICBM 발사시험에도 성공해 실질적인 핵무기 보유 단계에 진입한다면 ‘핵 동결 후 폐기’라는 해법은 빛이 바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따라서 이런 구상이 현실화되려면 북핵 비핵화를 시도하면서도 국제 공조를 통해 북한이 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용수 기자 jeong.yoo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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