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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 센스, '물맛' 느끼는 미각 세포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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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맛을 느끼는 미각 세포는 물맛도 느끼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Oka Laboratory/Caltech]

신맛을 느끼는 미각 세포는 물맛도 느끼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Oka Laboratory/Caltech]

교과서적인 정의에 따르면 물은 무색·무취·무미한 물질이다. 기원전 330년경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에는 그 자체의 맛이 없으며, 그저 맛의 매개체일 뿐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약수터를 찾아다니던 시절부터 특정 생수나 정수기를 고르는 오늘날까지, '물맛'이 있다는 믿음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물의 역사가 있다. 지금까지는 물의 맛이란 물에 함유된 미네랄 등에 좌우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물 자체를 감각하는 미각 세포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신맛 느끼는 세포가 물맛도 느끼더라" #칼텍 연구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게재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 생물학과 오카 유키 조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신맛을 감지하는 미각수용체가 물의 맛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칼텍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오카 교수는 "혀는 소금, 설탕, 아미노산 등의 맛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입안에서 물을 감지하는 방법은 알 수 없었다"면서 "여러 곤충 종은 물을 맛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포유동물 역시 물을 감지하는 매커니즘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각 세포, 단짠신쓴맛 외 물맛에도 반응 

연구팀은 여러가지 맛에 대한 생쥐의 미각 신경의 전기적 반응을 측정했다. 쥐는 단맛·짠맛·신맛·쓴맛·감칠맛 등 5가지 맛에 예상대로 반응했다. 뿐만 아니라 순수한 물에도 자극을 받았다. 논문의 제 1저자인 드루브 조키 "이는 5가지 미각수용체 중 어떤 세포는 물맛을 느끼는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흥미로운 발견이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쥐의 혀에서 물을 감지하는 미각수용체를 찾는 작업을 진행했다. 유전자 조작과 약리학적 방법을 이용해 특정 미각수용체의 기능을 하나씩 차단했다. 가령 짠맛을 느끼는 미각수용체를 차단시키면 생쥐는 소금맛에는 반응을 하지 않았지만 다른 맛을 느끼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불빛으로 신맛 세포 자극하자 빛 핥아 

오카 교수는 "놀랍게도 신맛 세포를 비활성화시키자 물에 대한 반응이 완전히 사라졌다"면서 "결국 신맛을 느끼는 세포를 통해 물이 감지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물 대신 빛으로 신맛 세포를 자극할 수 있는 '옵토제네틱스(optogenetics)'라는 기술을 사용했다. 연구진은 물병에서 물을 제거한 뒤, 동물이 물병을 만지면 병의 주둥이에서 파란빛이 나오도록 했다. 이들은 목마른 유전자 변형 쥐가 물을 먹으려고 물병으로 가서는 불빛을 "마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쥐들은 포기하지 않고 주둥이를 계속 핥았다. 어떤 쥐는 물병 주둥이를 10분당 2000번이나 핥았다. 빛이 물맛을 느끼는 세포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쥐는 물병에 진짜 물이 채워져 갈증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물마시는 행동을 했다. 신맛 수용체가 마시는 행동을 이끌어낼 수는 있지만 뇌에 '갈증이 해소됐으니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오카 교수는 "이와 같은 실험을 통해 신맛 세포를 자극했다 해도 갈증이 해소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발견은 우리의 뇌가 어떻게 정상 상태와 목이 마른 상태에서 물의 신호를 변환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미각 세포 신호가 두뇌에 곧장 전달되는 건 아냐 

신맛수용체는 물맛도 느낀다. [사진=PEXELS]

신맛수용체는 물맛도 느낀다. [사진=PEXELS]

신맛은 종종 불쾌한 맛과 관련이 있다. 사람들이 생 레몬을 먹을 때 씹어 먹을 때 얼굴을 찌푸리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처럼 생쥐 역시 레몬즙은 먹지 않으려 한다. 흥미롭게도 연구팀이 빛으로 쥐의 신맛 수용 세포를 자극했을 때 그와 같은 신맛 회피 행동은 관찰되지 않았다. 신맛을 느끼는 세포가 불쾌한 신맛을 두뇌에 직접 전달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결국 미각 수용 세포가 두뇌에 어떤 신호를 전달하는지, 어떤 매커니즘에 의해 맛에 의한 행복감이나 불쾌감 등이 나타나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 셈이다.

이번 연구는 맛의 5가지 감각에 이어 물맛이 제 6의 미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음을 알려준다. 나아가 지금까지 알려진대로 다섯가지 맛 세포가 각각 해당하는 맛만을 감지하는 게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추가 미각이 숨어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같은 연구 결과는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지에 지난달 말 게재됐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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