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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모델 시간당 생산량까지 노조 동의 받아야 하는 현대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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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노동조합이 임금인상·복지 등의 사안을 두고 회사와 협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회사가 신제품을 출시할 때 반드시 노조 동의가 필요하다면 어떨까.

임단협에 노조 심의·의결 규정 #노조에 품질 테스트 참여 제안도 #한국GM·쌍용은 협의 혹은 통보 #“GM·도요타는 노조에 권한 없어 #글로벌 차 회사 중 현대차가 유일”

현대자동차가 14일 공식 출시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코나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불거졌다. 현대차는 당초 15일 울산공장 승용1공장 11라인에서 코나를 양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노조가 반대하면서 일정이 지연됐다. 사측은 대체인력 투입 가능성까지 검토하면서 마라톤 협상에 임한 끝에 17일 새벽 코나 생산에 합의했다. 당초 계획보다 4일 늦은 19일부터 코나 양산이 시작됐다.

21일 현대차는 역대 처음으로 울산공장 노조 간부들이 코나의 품질 테스트에 참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회사 측이 먼저 노조에 품질 테스트 참여를 제안했고 이를 노조가 수락했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이처럼 노조의 콧대가 높은 근거는 임금 협상 및 단체협약(임단협) 제41조에 근거한다. 이 조항은 ‘신규 프로젝트 개발의 경우 조합원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심의·의결한다’고 명시한다.

노조는 이 조항을 근거로 코나의 모듈(부품 세트) 투입 규모와 근로자 노동시간에 이견을 제시했다.

당시 현대차 울산1공장에서 범퍼 등 외장부품을 조립하는 의장부의 노조 대의원회는 코나의 시간당 생산량(UPH)을 현대차가 요구한 수준(50UPH)의 절반 이하로 낮추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 신차에 적용할 부품의 품목·범위·규모를 결정하는 모듈협의도 진통이 있었다. 협력 업체는 현대차에 부분적으로 조립한 부품 집합을 모듈 형태로 넘긴다.

이때 기존에 생산하던 차량과 비교해 신차의 모듈에 포함된 부품이 많으면 현대차 공장 근로자는 덜 필요하게 된다. 조립할 게 적어진 탓이다.

협력 업체로 일감이 넘어갔을 때 노조원 피해를 우려해 모듈협의를 따로 진행하는 것이다.

물론 노조 요구가 실정법 위반은 아니다. 김형준 노무법인 다현 노무사는 “원칙적으로 신차 개발은 회사 경영 관련 사안으로 노사 교섭 대상이 아니지만, 신차 개발이 근로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현대차 노조 사례가 일반적인 경우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법은 아니지만 흔한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국산 자동차 제조사도 신차를 출시할 때 노조와 협의는 한다.

한국GM 임단협 62조는 ‘신차종 양산시 안전·시설·환경·인원에 대해 노조와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명시했고, 쌍용자동차도 ‘회사는 신차 개발 사항에 대해 노조에 통보하며, 기타 제반 사항은 노조와 협의한다’고 기재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노조에 ‘협의’ 또는 ‘통보’를 하지만, 현대차처럼 노조가 신차 계획을 심사(심의)하거나 신차 생산을 결제(의결)까지 할 권리는 없다는 뜻이다.

르노삼성차는 “신차 출시는 경영관리에 대한 사안으로 노조와 사전 협의 사항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복수의 경제단체 노무관리 담당자는 “제너럴모터스(GM)·폴크스바겐·도요타 등 주요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은 모두 노조가 신차 생산을 심의·의결할 권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사회학과 교수는 “예외가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신차 개발에 노조 의결이 필요한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는 현대차 말고는 없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유독 현대차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단체교섭은 각국 사회경제에 따라 달라지는 역사의 산물인데 최근 판례가 단체교섭의 범위를 폭넓게 보는 분위기”라며 “노조가 신차 개발에 관여하는 기업은 드물지만, 최근에는 공장이전 등 경영권 관련 사안에 노조 참여를 인정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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