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이 글의 주제를 바꾼 ‘탈락’ 피아니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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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정문화부 기자

김호정문화부 기자

원래는 다른 주제로 글을 쓰려 했다. 소음을 가리기 위해 음악을 들었는데, 그 음악 때문에 주제를 바꿨다.

피아니스트 김다솔(28)에 대해 쓴다. 그가 연주한 슈만을 듣고 있다. 2년 전 음반이다. ‘녹음 편집 과정에서 손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싶게 비틀거리는 부분도 있다. 가끔은 지나치게 몰아치며 연주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정석은 아니다. 김다솔의 연주는 대학 입시용도, 콩쿠르용도 못 된다.

김다솔은 지난 10일 미국에서 끝난 제15회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탈락했다. 물론 세미 파이널까지 올라갔고 마지막엔 심사위원장 특별상도 받았다. 미안하지만 탈락한 건 맞다. 최종 6인에 들지 못했다.

콩쿠르 연주가 궁금해 동영상을 봤다. 김다솔은 김다솔답게 피아노를 쳤다. 간혹 지나치다 싶게 오케스트라와의 주도권을 쥐고 갔다. 나는 연주자와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다면 이렇게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갑자기 빠르게 치면 심사위원이 싫어할 걸요” 또는 “2악장은 더 느리게 쳐야 높은 점수를 받을 걸요?” 김다솔은 그렇게 연주하지 않았고 콩쿠르에서 쓴맛을 봤다.

이번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우승자는 한국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8). 김다솔과 동갑이다. 28세는 말하자면 국제 콩쿠르의 ‘막차’다. 보통 연령 제한 30세인 콩쿠르가 4~5년마다 열리니 둘 모두에게 ‘다음’이란 건 없었을 거다.

선우예권은 한국인 최초로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다. 2년 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보다 다섯 살 많지만 A급 국제 콩쿠르 우승자니 ‘제2의 조성진’으로 알려지며 음악계 판도를 뒤엎었다.

요즘엔 ‘웬만한 국제 콩쿠르에는 모두 한국인 우승자가 생겼다’고 말할 때, 우승자가 아닌 김다솔의 이름이 떠오른다. 또 ‘한국 연주자들이 콩쿠르에 목숨 걸었다’고 단언하기 전에 들어야 할 것이 피아니스트 김다솔의 연주라고 생각한다. 반(反) 콩쿠르적인 개성파 피아니스트가 왜 국제 콩쿠르에 또 나가야 했나. 생각이 뚜렷한 음악가에게 연주 기회, 좋은 무대는 왜 이렇게 부족한가. 실력 있는 연주자들을 보러 오는 관객은 왜 이토록 부족한가. 콩쿠르 수상을 축하하고 난 뒤에 꼭 따라와야 할 고민이다.

김다솔은 콩쿠르에서 떨어졌지만 연주는 매혹적이었다. 1등만 주목하는 사람은 영원히 알지 못할 세계가 무섭도록 강렬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 세계가 아까워 글의 주제를 바꿨다.

김호정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