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우리 집을 못 찾겠군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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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하성중앙대 전자전기공학부 1학년

박하성중앙대 전자전기공학부 1학년

통장 잔액 34만원, 나는 가출했다. 왕복 약 3시간의 통학은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에게 너무 큰 고통이었다. 그런 고민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하지만 내게 돌아온 대답은 나를 비참하게, 아니 오히려 화나게 만들었다. “그럼 재수해서 가까운 대학으로 가든가. 왜 굳이 먼 대학으로 갔니?” 나는 당당하게 내 힘으로 자취에 성공할 것이라고 말하고 집을 뛰쳐나왔다.

당장 필요한 건 머물 곳이었다. 이후 부동산 일곱 군데를 돌아다니며 12개의 방을 알아보았고,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35만원짜리 방을 얻기로 했다. 그런데 월세는 아르바이트로 충당해도 보증금 200만원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한국장학재단의 대학생 생활비 대출은 이미 신청 기한이 끝나버렸다. 다른 방법을 찾아다녔지만 신용도 담보도 없는 대학생에게 선뜻 몇 백만원을 빌려주는 곳은 찾기 어려웠다.

결국 인터넷 대출 광고를 들여다봤다. 금리 연 7.0~27.7%, BIS 비율 62.94%, 원리금 균등분할 상환 등 모르는 단어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수많은 대출 홈페이지는 마치 파리지옥처럼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 같아 보였다. 한마디로 정보가 부족했고, 마땅한 프로그램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힘들게 찾은 신용회복위원회의 ‘대학생 햇살론’도 처음 보는 서류들을 작성해 전문 상담사와 상담한 후 심사를 거쳐 돈을 지원해 주는 식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대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한 통계에 따르면 현재 통학하고 있는 대학생 가운데 74.3%가 자취할 의사가 있지만 그중 51.5%의 학생이 경제적 문제 때문에 자취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 통학하는 학생 중 80% 이상이 통학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몇몇 학생은 학업에 지장을 받는다고도 말한다. 기숙사 심사에 성적이 반영되는 학교에서는 제주도에 사는 학생마저 ‘기숙사 불합격’이라는 통보를 받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자취를 선택해야 하는 대학생이 많은데도 사회는 충분한 도움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 청년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임차보증금 또는 생활비 대출 관련 상품이 별로 없다. 이러다보니 보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과도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 등록금만 학비가 아니다. 좀 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계된 상품이 필요하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혼자 끙끙거리다 나는 가출을 포기했다. 오늘도 왕복 3시간의 통학 길을 걷고 또 걷는다.

박하성 중앙대 전자전기공학부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