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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국가인권위가 '착한병원' 홍보한 정신병원, 환자 29명 노동력 착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신 질환으로 입원한 장애인들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급을 받고 일해온 전남의 한 정신병원 세탁실. 장애인들은 이곳에서 환자복 세탁과 수선 작업에 동원됐다. 인권위는 수년 전 이 병원을 인권친화적인 의료시설로 소개했다. [사진 전남지방경찰청]

정신 질환으로 입원한 장애인들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급을 받고 일해온 전남의 한 정신병원 세탁실. 장애인들은 이곳에서 환자복 세탁과 수선 작업에 동원됐다. 인권위는 수년 전 이 병원을 인권친화적인 의료시설로 소개했다. [사진 전남지방경찰청]

정신 질환으로 입원한 환자들에게 일을 시키고도 제대로 된 임금을 주지 않은 전남 나주의 정신병원이 경찰에 적발됐는데 알고보니 국가인권위가 과거에 이 병원을 '인권 친화적인 의료시설'로 추켜세웠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병원 청소, 환자복 세탁·수선, 간병에 환자 29명 동원 #시급 300원~2000원 적용…1억 넘게 덜 주고 혐의 부인 #인권위, 수년 전 웹진서 인권 친화적인 병원으로 묘사

인권위는 해당 병원에서 장애인들이 인권을 보장받으며 치료받을 수 있는 것처럼 소개했지만, 경찰에 따르면 실상이 전혀 달랐다고 한다.

전남지방경찰청은 장애인들에게 병원 일을 시키고 임금을 착취한 혐의(의료법 위반 등)로 전남 지역 모 정신병원 병원장 A씨(62)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지난 15일 발표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14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자신의 병원에 입원 중인 B씨(53ㆍ여) 등 정신장애인 29명에게 병원 일을 시킨 뒤 임금을 착취한 혐의다.

A씨는 판단력이 다소 떨어지지만 몸을 쓰는 데 무리가 없는 B씨 등을 배식, 병원 청소, 환자복 세탁ㆍ수선, 중증환자 간병 등 업무에 동원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A씨는 병원 직원을 대신해 업무를 한 B씨 등에게 최저임금(2017년 기준 6470원)보다 훨씬 낮은 시급 300원~2000원을 적용해 ‘간식비’ 명목으로 돈을 지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이 확인한 미지급 임금은 1억2817만원이다.

경찰은 회계 내역상 2014, 2015년 2년간 영업수익이 13억8000여만원에 달하는 병원 측이 수익 극대화를 위해 직원들을 채용하는 대신 환자들을 이용한 것으로 판단했다.

전남지방경찰청 전경. [사진 전남경찰청]

전남지방경찰청 전경. [사진 전남경찰청]

A씨는 경찰에서 “입원 환자들에게 노동을 강요하지 않았고, 자발적인 봉사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며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경찰은 임금 지급을 위해 관할 노동청에 해당 병원을 통보했다. 또 세금 탈루 여부에 대한 조사를 위해 관할 지방국세청에도 알리기로 했다.

A씨의 병원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인권위가 발행하는 월간 웹진『인권』에 소개된 적이 있다.인권위는 당시 해당 병원을 현장 취재한 뒤 “정신병원도 ‘사람’ 사는 곳이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자세히 소개했다.

인권위는 당시 웹진에서 이 병원이 정신병원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쇠창살이 존재하지 않는 점, 병실과 직원들의 업무실 사이에 칸막이가 없는 점, 인터넷과 전화 사용이 자유로운 점 등을 언급하며 ‘개방적 치료 환경’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장애인 환자들이) 식당 보조와 세탁 일을 하며 시간당 4000원 정도를 받는 재활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경찰 수사 결과와는 전혀 다르다고 한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이번 수사를 통해 드러난 장애인 임금 착취 기간은 2014년 1월부터 올해 초까지 3년여이지만, 정황상 오래 전부터 비슷한 범행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인권위는 병원장 A씨에 대한 인터뷰도 기사에 실었다. A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정신장애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서비스가 (우리 정신병원의)경쟁력이다”라고 말 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A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기자가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병원 측은 “원장님이 부재 중이어서 답변이 어렵다”고 말했다.

무안=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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