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고층아파트 대화재…불 속 주민 보고도 못 구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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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에서 24층짜리 아파트 전체가 불타고 주민 다수가 희생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14일(이하 현지시간) 0시54분쯤 런던 서쪽 켄싱턴 북부의 그렌펠 타워에서 불이 나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옮겨붙었다. BBC 등에 따르면 영국 경찰은 오후 저녁 12명이 숨지고 약 70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밝혔다.

400~600명 거주하는 임대아파트 #저층에서 발생해 24층 모두 불 타 #사고 원인, 사상자 수 파악 안돼 #

런던경찰청 스튜어트 쿤디 국장은 "현 시점에서 12명 사망을 확인할 수 있지만 복잡한 수습 과정에서 사망자 수가 늘어날 것 같다"며 "불행히도 추가로 생존자가 있을 것으로는 예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티브 앱터 런던소방대 부대장도 소방관들이 건물 대부분에 대한 수색을 마쳤다고 밝혔다.

아파트에는 120가구 400~60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 상당수가 화재 당시 건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돼 인명 피해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14일 화재가 발생한 런던의 임대아파트, 그렌펠 타워. 자정 넘어 발생한 화재는 동이 틀 때까지 진압하지 못할 정도로 대형 참사였다. [AP=연합뉴스]

14일 화재가 발생한 런던의 임대아파트, 그렌펠 타워. 자정 넘어 발생한 화재는 동이 틀 때까지 진압하지 못할 정도로 대형 참사였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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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은 “화재 발생 50분 만에 불길이 건물 전체로 번져 구조대가 도착하고도 속수무책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앞서 쿤디 국장은 “희생자 수 및 신원 파악, 사고 수습에 며칠은 걸릴 것”이라며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 소방 당국의 대니 코튼 대장도 “건물이 크고 복잡해 사망자 수를 말하긴 이르다”며 “29년 동안 소방 업무를 하면서 처음 겪는 최악의 화재”라고 말했다.

BBC와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들은 불이 건물 저층에서 폭발음과 함께 시작됐다고 전했다. 당초 2층에서 불이 시작됐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4층에 사는 남성이 집 냉장고에서 불이 났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는 엇갈린 목격담도 전해졌다. 가스 폭발로 추정되는 불꽃을 봤다는 증언도 나왔다. 하지만 쿤디 국장은 “현 단계에서 화재 원인을 밝히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그렌펠 타워 화재는 저층부에서 발생해 삽시간에 고층부로 번졌다. [AP=연합뉴스]

그렌펠 타워 화재는 저층부에서 발생해 삽시간에 고층부로 번졌다. [AP=연합뉴스]

1974년 건축된 해당 건물은 임대아파트로 켄싱턴·첼시 구청이 소유하고, 관리는 영국 최대 임대 관리업체인 ‘켄싱턴첼시임대관리회사(KCTMO)’가 맡고 있다. 이 업체는 2012년부터 2년간 외벽과 난방 시스템 등을 리모델링 했다. 화재 당시 건물에선 화재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

1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서부 켄싱턴의 24층 임대아파트에서 큰 불이 났다. 오전 1시쯤 저층부에서 폭발음과 함께 시작된 화재는 50여 분 만에 상층부까지 번지며 건물 전체를 전소시켰다. 화재의 원인과 정확한 피해 규모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AFP=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서부 켄싱턴의 24층 임대아파트에서 큰 불이 났다. 오전 1시쯤 저층부에서 폭발음과 함께 시작된 화재는 50여 분 만에 상층부까지 번지며 건물 전체를 전소시켰다. 화재의 원인과 정확한 피해 규모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AFP=연합뉴스]

7층에서 탈출한 폴 무나크는 “불은 건물 외벽을 타고 확산했는데, 화재 경보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BBC에 말했다. 외장재를 새로 덮으면서 불에 취약한 가연성 단열재가 포함된 패널로 마감한 것이 급속하게 불이 번진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KCTMO는 2014년 리모델링 진행 중 안내문에서 “각 가구의 현관은 화재 발생 시 30분간은 견딜 수 있기 때문에 화재 발생 시 다른 고지가 없으면 실내에 머물러야 한다”고 소개한 것으로 보도돼 향후 논란도 예상된다.
창문을 통해 뛰어내리는 주민과 어린 자녀를 살리기 위해 창밖으로 던지는 장면도 목격됐다고 영국 언론은 보도했다.

해당 건물은 리모델링 이전부터 입주자협의회 측이 화재 위험을 제기해 왔던 곳으로 소방차 등 응급 차량 접근도 힘들었다고 한다. 한 생존자는 “언젠가는 일어났을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전형적인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프랑스 방문 중이던 테리사 메이 총리는 이날 일정을 앞당겨 귀국했다. 그는 성명을 통해 “비극적인 인명 손실에 매우 슬퍼하고 있다”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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