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러 폭탄' 김씨의 하숙집 주인 "여자친구 한 번 안 데려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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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 폭탄'으로 교수를 다치게 한 혐의(폭발물사용죄)로 13일 체포된 연세대 대학원생 김모(25)씨에 대한 경찰 조사가 이틀째 이어지고 있다. 경찰은 범행 동기와 경위를 확인하고 곧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동료들 "영어 스트레스 얘기 들은 적 없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서대문경찰서 서현수 형사과장은 "김씨가 지난 4월에 발생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테러를 보고 폭발물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그는 "테러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이 경우 김 교수를 겨냥했기 때문에 테러라고 보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모(25)씨는 자신의 하숙집 건너편 담벼락에 '텀블러 폭탄'을 만들 때 사용한 장갑을 버렸다. 이 장갑에 묻은 화약 성분이 경찰이 김씨의 자백을 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나한 기자

김모(25)씨는 자신의 하숙집 건너편 담벼락에 '텀블러 폭탄'을 만들 때 사용한 장갑을 버렸다. 이 장갑에 묻은 화약 성분이 경찰이 김씨의 자백을 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나한 기자

폭발물을 만들기로 결심한 김씨는 약 한 달 간 자신의 하숙방에서 '실험'에 매진했다. 건전지를 구입해 점화장치를 만들어 보는 등 공학도로서 가진 지식을 동원해 폭발물을 만들었다. 그렇게 지난 10일 '텀블러 폭탄'이 완성됐다. 3일 동안 망설이던 김씨는 13일 오전 2시37분에 집을 나섰다. 하숙집에서 연구실이 있는 연세대 제1공학관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새벽 3시쯤 학교에 모습을 드러낸 김씨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연구실에 있는 입체(3D) 프린터를 작동시켰다. 오전 7시 40분쯤 이 건물 4층에 있는 김모(47) 교수 방 앞에 폭발물이 든 쇼핑백을 내려놓고 하숙집으로 돌아갔다. 하숙집 주인 A씨는 "김씨가 13일 오전 8시가 조금 넘었을 때 하숙집에서 아침밥을 먹었다"고 기억했다.

"연세대 공학관에서 택배상자가 폭발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된 것은 오전 8시 41분이었다. 김씨의 의도와 달리 강력한 폭발은 없었고, 화약이 연소되며 불길이 치솟아 김 교수가 팔과 얼굴에 1~2도 화상을 입었다. 경찰은 건물 폐쇄회로(CC)TV 영상으로 김씨의 동선을 파악했다. 김씨의 동선은 캠퍼스 밖 하숙집 근처까지 이어졌고, 김씨가 비닐봉지에 무언가를 싸서 본인이 사는 하숙집 앞에 버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비닐봉지 안에는 화약이 묻은 장갑이 있었다. 경찰은 이 증거물을 이용해 김씨의 자백을 받아냈고, 범행 후 12시간이 되기 전인 오후 8시 23분쯤 김씨는 체포됐다.

연세대 '텀블러 폭탄' 사건 피의자 김모(25)씨가 살던 하숙집. 김나한기자

연세대 '텀블러 폭탄' 사건 피의자 김모(25)씨가 살던 하숙집. 김나한기자

하숙집 주인 A씨는 “여자친구 한 번 집에 데려온 적 없는 착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는 그 학생이 범인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하숙집에서 폭발물을 만들었다는데 냄새가 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방 안에서 (화약 등) 이상한 냄새가 난 적은 없다”고 했다.

김씨와 같은 연구실에서 공부해온 외국인 동료 B씨도 그에 대해 좋은 평가를 했다. B씨는 "평범한 학생이었고 김 교수와도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일이 몰렸다거나, 김씨가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얘기다"고 말했다. B씨는 김 교수에 대해서는 "영어도 잘하고 친절한 분이다. 내게 무슨 고민이 있는지에 늘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지난해 교내 온라인 소식지에 실린 김 교수와 연구실 학생들의 단체 사진에서 김씨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동료들과 어울려 앉아 있었다.

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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