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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의 제대로 읽는 재팬] 지방선거 고이케 세몰이 … 총리·장관까지 등판해 맞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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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윗선의 뜻을 헤아려 처리하는) 손타쿠(忖度) 정치라는 말이 있는데 손타쿠 정치를 가장 상징하는 곳이 자민당 도쿄도 지부연합회(도쿄 도련)이고, 도 의회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세요.”

내달 2일 도쿄 도의회 선거 앞두고 #신당 ‘도민퍼스트회’ 대표 된 고이케 #아베 ‘손타쿠 정치’ 꼬집으며 총력전 #자민당 패배 땐 총리 3연임 빨간불

고이케 유리코(사진 가운데) 도민퍼스트회 대표와 아베 신조 총리가 도쿄도 의회 선거에서 맞붙었다. 지방 선거 지만 결과에 따라 정치 판세가 요동칠 수 있어서 다. [지지통신]

고이케 유리코(사진 가운데) 도민퍼스트회 대표와 아베 신조 총리가 도쿄도 의회 선거에서 맞붙었다. 지방 선거 지만 결과에 따라 정치 판세가 요동칠 수 있어서 다. [지지통신]

지난달 20일 오후 도쿄 번화가인 시부야(澁谷) 역 앞. 유세차에 오른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65) 도쿄도 지사가 자민당 비판을 쏟아냈다. 다음 달 2일 도쿄도 의회(127석) 선거를 맞아 고이케는 이날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지역정당 ‘도민퍼스트회’ 후보 지원 연설에 나섰다.

연설의 키워드 ‘손타쿠’는 자민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겨냥한 것이었다. 아베 총리의 친구가 이사장인 대학 재단의 수의학부 승인 과정 등에서 관료들이 총리 뜻을 헤아려 편의를 봐줬다는 의혹이 일면서 손타쿠는 일대 유행어가 됐다. 고이케는 “보스의 기분을 헤아리는 좋은 아이가 되지 않으면 (도의회) 의장도, (상임) 위원장도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도 의회 개혁을 전면에 내걸었다. “자민 도쿄 도련은 (간접흡연 대책 등의) 뒷다리를 잡고 있다”며 “의원 스스로 정책 제안을 하는 의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이케는 지난 1일 자민당에 탈당계를 제출하고 도민퍼스트회 대표에 취임했다. 고이케는 이날 열린 당 총결기대회에서 “낡은 의회를 새로운 의회로 바꾸자”고 선언했다. 지난해 도지사 선거 당시부터 도 의회를 ‘블랙박스’로 비난해온 그였다. 자민당 도쿄도련 주도의 불투명한 정책 결정 과정을 빗댄 말이었다. 현재 도민퍼스트회 홈페이지는 도의회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 차 있다. ‘도쿄는 빠르다. 도정은 늦다. 도 의회는 더 늦다.’ ‘의원이 되면 공부하지 않는다. 4년간 낙제가 없으니 파티와 야유만 잘한다.’ ‘과거 25년간 성립한 의원 제안 조례는 단 하나. 도 의회는 뭘 하는가’….

고이케 유리코 도민퍼스트회 대표와 아베 신조(사진 오른쪽 둘째) 총리가 도쿄도 의회 선거에서 맞붙었다. 지방 선거 지만 결과에 따라 정치 판세가 요동칠 수 있어서 다. [지지통신]

고이케 유리코 도민퍼스트회 대표와 아베 신조(사진 오른쪽 둘째) 총리가 도쿄도 의회 선거에서 맞붙었다. 지방 선거 지만 결과에 따라 정치 판세가 요동칠 수 있어서 다. [지지통신]

도쿄도 의회 선거가 23일 공시도 되기 전에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광역지자체 의회 선거인데도 국회의원 선거를 뺨치는 열기다. 지지율 70% 안팎의 고이케가 선거의 얼굴로 등판하면서 지역 정당이 처음으로 전국 1당인 자민당을 제칠지가 쟁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아베 내각의 장기 집권을 가늠하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선거는 결국 아베와 고이케의 한판 승부인 셈이다. 자민당도 일찌감치 총력전에 돌입했다.

“급하게 탄생한 정당에 도정을 뒷받침할 힘이 없다. 이미지만 앞서고 지역과의 유대도 없고 실행력을 동반하지 않는 사람들이 정치를 혼란시키고 정체시킨 실례가 몇 개나 있다.”

지난 13일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도쿄도련 총결기대회. 아베 총리는 비디오 메시지에서 고이케 신당을 정조준했다. “도 의회 선거는 엄중하다”면서 “결과를 낼 수 있는 것은 경험과 실행력이 있는 자민당 의원들이다”고 말했다. 대회에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관방장관도 등단해 고이케 신당을 비판했다. “‘어떻든 퍼스트’라는 새 정당은 아직 무엇을 이루려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며 “퍼포먼스와 이미지로 싸우려하는 후보에 져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민당은 고이케 도정을 ‘결정하지 못하는 정치’라고 비판한다. 도쿄의 부엌인 쓰키지(築地)시장 이전이나 중앙정부 등과의 도쿄올림픽 경비 분담 결정이 지연되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판세는 아직 유동적이다. 부동층이 많다. 여론조사 상으론 1당을 놓고 자민당(현 57석)과 도민퍼스트회(현 5석)가 백중세다. 아사히신문이 이달 초 실시한 투표 의향 정당 조사에서 두 당은 나란히 27%를 기록했다. 4월 조사에서 자민 31%, 도민퍼스트회 20%였던 점을 고려하면 고이케 쪽이 상승세다. 고이케 인기와 동떨어져 있던 도민퍼스트회 지지율이 그의 대표 취임으로 순풍을 타는 모양새다.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우치야마 유(內山融)교수는 “기성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이 도민퍼스트회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고 있다”며 “유럽·미국에서 기성 정당·정치인이 지지를 잃고 신생 정당이 세를 모으고 있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도민퍼스트회는 공명당과 더불어 과반(64석) 확보를 목표로 삼고 있다. 당초 70명 정도를 공천할 방침이었으나 48명으로 줄였다. 23명이 출마하는 공명당(현 22석)과의 선거 협력 합의 때문이다. 공명당은 종교단체 소카가카이(創價學會)를 지지 모체로 해 조직표가 탄탄하다. 과거 도의회 선거에서 6회 연속 출마자 전원이 당선됐다. 공명당은 국정·도정에서 모두 자민당과 연정을 펴왔으나 도정에서 40년만에 결별하고 고이케 신당 지지로 돌아섰다. 자민당으로선 뼈아쁜 ‘우군 상실’이다.

자민당은 60명을 공천했다. 최대 우군은 전통적 지지 세력인 업계와 단체다. 자민당은 지방선거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의 지원 체제를 구축했다. 당내 8개인 파벌을 모두 동원했다. 업계 단체와의 파이프가 두터운 참의원 비례대표의 지원도 독려하고 있다. 아베 총리도 선거 공시후 직접 유세에 나설 계획이다. 자민당이 대거 나선 이유는 이번 선거가 국정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자민당이 선거에서 지면 내년 가을의 총재 선거에서 아베가 3연임에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2020년 새 헌법을 시행하겠다는 아베의 개헌 구상도 탄력을 받기 어렵다. 우치야마 교수는 “자민당이 패하면 (내년말까지의)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의석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 때문에 아베 총리는 현 중의원 임기 내에 개헌을 서두를지 모른다”고 내다봤다.

도의회 선거 결과가 국회의원 선거의 전조가 된 예는 적잖다. 자민당은 2009년 7월 도의원 선거에서 대패한 뒤 한달 만의 중의원 선거에서도 참패해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줬다. 1993년 6월 도의회 선거에선 창당 1년의 일본신당이 3당으로 약진했다. 그해 7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수를 밑돌면서 일본신당의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대표를 총리로 하는 비(非)자민 연립정권이 탄생했다. 당시 고이케는 일본신당 참의원 의원으로 도의회 후보자 선정에 깊숙히 관여했다. 고이케가 다음 중의원 선거에 후보자를 내 중앙 정치로 진출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자민당이 도민퍼스트회를 93년의 일본신당에 견주는 이유다. 일본 정국의 고이케 선풍과 변수는 이래저래 지속될 전망이다.

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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