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본 댓글 따라 찬반 의견 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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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호 01면

[탐사기획] ‘뉴스 댓글의 영향력’ 대학 강의실에서 실험해 보니

“이런 기레기(기자+쓰레기), 말이 되는 얘기를 해야지. 사유재산을 나라가 날름 먹으면서 10년 동안 아무런 재산권 행사도 못했는데 이걸 기사라고 쓰나. 사유재산 인정 안 해 주면 공산주의 하자는 것인데 이런 쓰레기 같은….”

‘바람의 언덕’ 매점 허가 논란 #‘사유재산 보호’ 댓글 본 학생 #80%가 “허가해야” 의견 밝혀 #‘공익 우선’ 본 학생은 “반대” #논리보다 다수 의견 동조 #소수 의견은 공포심 느껴 #여론 조작 악용 우려는 커져

“한려해상국립공원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사유지라도 그린벨트처럼 재산권이 침해되고 공익을 위해 희생할 수밖에 없는 곳이 많다. 더더군다나 국립공원이라면 전 국민의 재산이라고 봐야 한다.”

상명대 서울캠퍼스 가족복지학과 학생 30명은 9일 ‘인간행동과 사회환경’ 수업 중 뉴스와 이에 달린 댓글을 읽고 찬반의견을 내는 실험에 참여했다. 거제도에 있는 관광지이자 사유지인 ‘바람의 언덕’에 땅 주인이 매점을 설치하려는데 당국이 국립공원이라는 이유로 허가를 해 주지 않아 아예 출입을 막았다는 뉴스였다. 중앙SUNDAY가 ‘뉴스에 달린 댓글의 영향력’을 측정하기 위해 진행한 이 실험에서 학생들은 자신들은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두 그룹으로 나눠졌다. A그룹은 지주의 재산권이 보호돼야 한다는 내용의 댓글 3개와 반대 댓글 1개가 달린 기사를 봤다. 재산권 보호 주장 댓글에만 3개씩 공감이 달렸고 반대의견에는 공감이 없었다. B그룹은 국립공원이기 때문에 공익이 우선이고 재산권이 제한돼야 한다는 내용이 주가 되는 댓글 3개와 반대 댓글 1개에 노출됐다. 기사 내용은 같았다.

노출된 댓글 내용에 따라 학생들의 의견은 확연히 갈렸다. 사유재산권 보호 댓글을 접한 A그룹 학생들은 땅 주인이 매점을 설치하도록 정부가 허가해야 한다는 쪽으로 상당히 기울었다. ‘사유재산권을 지켜 줘야 한다’는 취지의 설문에 15명 중 12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보통이다’는 의견은 3명이었고 ‘아니다’고 답한 학생은 1명도 없었다. 반면 공익 우선 댓글을 접한 B그룹 학생들은 같은 내용 설문에 4명만 동의했다. 6명이 ‘보통이다’고 했고 5명은 반대했다.

학생들은 평소에 댓글을 많이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명 중 21명이 댓글을 많이 본다고 답했다. ‘보통이다’가 8명, ‘아니다’고 답한 학생은 1명이었다. ‘댓글만 보고 기사를 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설문엔 절반에 가까운 14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보통이다’는 7명, ‘아니다’는 9명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댓글의 규모와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7월 한 달간 네이버의 전체 댓글 수는 총 1억6920만 개였다. 하루 평균 545만 개의 댓글이 생성됐다. 이 중 뉴스(스포츠·연예 포함)에 달린 댓글은 한 달에 1230만 개였다. 네이버는 “최순실 국정 농단사건을 계기로 일반 뉴스의 댓글을 쓰는 사람 수가 무려 164% 증가했으며 탄핵사건 전후에도 18% 늘어났다”고 밝혔다. 특히 여성 참여가 증가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사건 이전 15% 정도에 머물렀던 정치섹션의 여성 비율은 문재인 정부 이후 30% 수준이 됐다.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이런 댓글의 영향력을 측정하고 있다. 강재원 동국대 사회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인터넷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의 효과 연구’ 논문에서 “자신과 큰 관계가 없는 이슈의 경우 이용자들은 댓글에 담긴 내용의 타당성을 숙고하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댓글의 견해와 동조시키려는 경향을 보인다. 글의 논리성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의견에 따라간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베댓(베스트 댓글)’ 등 다수 의견을 그냥 수용한다는 것이다. 상명대 학생들이 바람의 언덕 사유재산-공익 논란에서 댓글의 여론을 따라간 것과 같은 현상이다.

물론 자신의 신념이나 이익이 걸린 문제에서는 무작정 다수 여론을 따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댓글 등 커뮤니케이션 문화 연구를 하고 있는 류동협 박사는 “특정한 견해가 다수의 의견으로 받아질 경우 소수의 의견을 가진 사람이 그 의견을 표현할 때 고립될 수 있다는 공포심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댓글은 진화하고 있다. 연예인 악플, 익명성을 담보로 한 화풀이 대상 감정 쓰레기통으로 취급됐던 댓글이 공론의 장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은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댓글은 접근이 쉽고 큰 노력을 요구하지 않으며, 익명성 때문에 위축되기 쉬운 소수 의견이 자유롭게 발현될 수 있는 공간”이라며 “저비용·고효율의 일상적 정치 참여방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분석했다.

댓글의 영향력과 함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적으로 참여자의 선의와 자율규제에 의존하는 공간이어서 정제되지 않은 충동적인 글, 목소리 큰 열성 댓글러의 지배, 익명성 뒤에 숨은 삐뚤어진 시각이나 극단적 표현 등 부정적 기능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주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나 소수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여론 조작 가능성도 큰 문제다. 국정 농단 같은 큰 이슈가 아니면 이해당사자가 댓글을 조작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공공연히 댓글 조작이 이뤄지고 있다. 류동협 박사는 “댓글 공간이 조작에 취약한 구조이며 한국의 경우 포털 등으로 집중돼 영향력이 더욱 크다. 조작은 용납될 수 없으며 국정원 등 국가, 정치 권력, 기업 등이 여론을 호도하는 조작은 반드시 거부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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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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