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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의 주인공은 백화점 옥상에서 뛰어내렸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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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호 32면

『서울 문학 기행』저자: 방민호 출판사: 아르테 가격: 1만 8000원

『서울 문학 기행』저자: 방민호 출판사: 아르테 가격: 1만 8000원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 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은 주인공이 이 말을 외친 후 경성의 중심가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상상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한국 현대문학 연구가 방민호(52)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해석은 다르다. 텍스트를 정밀하게 읽어보면, 백화점 옥상에서 “금붕어 지느러미처럼 흐늑흐늑” 하는 행인들을 내려다보던 주인공은 어느덧 1층 백화점 출입문으로 나와 “이 발길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 것인가” 생각한다. ‘날개’의 주인공은 죽음을 택하지 않았으며, 억압적인 현실에서 날개를 달고 탈출하기를 꿈꿨다는 것이다.

이상은 1910년 서울 사직동에서 태어나 27세에 세상을 떠났다. 지금 서울 시민들이 무심히 지나는 서울역(당시 경성역·1925년 준공)과 신세계백화점 본점(당시 미쓰코시 백화점)은 그에게 자본주의적 현대성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그는 ‘날개’를 통해 거처와 사고방식, 행동 양식 등이 파격적으로 변해 가는 경성 모더니즘을 그리고 싶어했다.

또 한 명의 ‘경성 보이’였던 박태준의 단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주인공 구보도 역시 “한 개의 기쁨을 찾아” 경성 시내를 헤매다 경성역에 다다른다. 대학 노트를 끼고 경성역에 들어선 구보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떠나고 도착하는 그곳을 ‘도회의 항구’라고 표현한다.

방 교수의 서울 기행은 이렇게 이상과 박태준을 거쳐 윤동주·이광수·박인환·김수영·박완서 등으로 이어진다. 저자가 지난 1년 반동안 서울 곳곳을 누비며 이 도시에 남은 문학의 흔적을 채록한 결과물이다. 서울이라는 당시의 ‘모던 시티’는 그들의 작품에 어떠 맥락으로 자리잡았으며, 작가들은 어떻게 이 공간이 제약한 운명에 맞서 나갔는가.

시인 윤동주에게 서촌의 ‘누상동 9번지 하숙집’은 다섯 달 남짓한 기간에 10편의 시를 쓰게 한 영감의 산실이었고, 이광수의 ‘홍지동 산장’은 지식인의 변절과 문학인의 재능이 일장춘몽처럼 서린 곳이었다. 김수영의 생전 마지막 거처인 ‘구수동 41번지’에선 시대와 거리를 둔 시인의 불온 의식을 읽을 수 있고, 박완서의 『나목』에 등장하는 1950년대 계동과 명동 일대는 평범한 사람들의 ‘극성스러운 생명력’이 일으켜 세운 세계였다.

대화체로 조근조근 풀어낸 덕에 술술 읽히지만, 오랜 연구에서 나온 깊이 있는 통찰이 무게를 더한다. 특히 한국 문학사에서 잊혀져 왔던 임화·손창섭·이호철 등의 작가를 적극 조명한 것은 의의가 크다. 방 교수는 배우이자 시인이었던 임화의 사진과 출생지 등을 확인해 이 책에 공개했으며, 1973년 일본으로 떠난 뒤 행방이 묘연했던 손창섭의 문학과 삶을 돌아보기 위해 그의 일본인 아내를 만났다. 『잉여인간』을 쓴 손창섭은 60년대 서울 흑석동에 기거하며 도덕적 해이와 부정부패를 다룬 세태소설『인간교실』을 완성했다. 이호철 작가 역시『서울은 만원이다』에서 종로 3가를 배경으로 하층민을 사회에서 배제시키는 도시 개발의 이면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작가별로 구성된 각 장의 앞에는 답사를 위한 지도도 담겨있다. 읽다 보면 당장 책을 들고 도시 탐사를 나서고 싶어질 게다. 종로 4가에선 폐결핵에 걸린 시인 임화가 35년경 요양을 위해 마산으로 떠나며 썼던 ‘다시, 네거리에서’를 떠올려봐도 좋겠다. 경성에서 태어나고 자라 당시 종로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시로 기록해 온 그에게 종로 4가는 애증이 교차하는 고향과도 같았다. “오오, 그리운 내 고향의 거리여! 여기는 종로 네거리./(…) 지금 돌아가 내 다시 일어나지를 못한 채 죽어가도/ 불쌍한 도시! 종로 네거리여! 사랑하는 내 순이야!”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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