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이중 잣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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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송인한연세대 교수·사회참여센터장

송인한연세대 교수·사회참여센터장

새 정부의 조각작업이 진행되며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미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최고의 위치에까지 오른 이들이지만 대중 앞에서 조명을 받으며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는 것은 또 다른 관문입니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중 잣대는 왜곡된 사고 #합리적 인사청문회로 좋은 후보자 검증하기를

눈에 띄는 인사 중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김동연 아주대 총장이 있습니다. 그는 기획재정부 제2차관과 국무조정실장을 지냈고,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국정 마스터플랜을 주도한 전문가입니다. 총장 시절 학생들에게 특별한 존경을 받은 교육자이며 유려한 필력을 가진 명칼럼니스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를 소개할 때마다 ‘고졸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의 최종 학력은 명문 미시간대학 정책학 박사인데도 말입니다.

길고 긴 인생의 여정 속에서 각자 처했던 상황과 택한 선택이 모두 다르건만 획일적으로 규격화된 삶의 일정에 들어맞지 않으면 ‘정규’ 인생트랙에서 벗어난 듯 여기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지요. 이후 삶에서 스스로 성취한 많은 일에도 불구하고 10대 후반의 상황으로 그 이후의 삶을 규정하는 것은 사회적 고착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타인에 대한 이런 경향은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집니다. 타인에게는 인생에서의 가장 낮은 순간을, 스스로에게는 가장 높은 순간을 기준으로 삼는 인지 왜곡이라고 할까요. 때로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선택해 받아들이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긍정적인 것은 확대(magnifica tion)하고 타인의 것은 축소(minimization)하는 이중 잣대를 가집니다. 반대로 자신의 약점이나 부정적인 것은 축소하고 타인의 것은 확대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런 이중 잣대는 귀인(歸因·attribution)의 경향에서도 드러납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부정적 행동은 상황과 환경에 원인을 돌리고 타인의 부정적 행동은 내적인 원인, 즉 도덕성이나 인격 때문이라 생각하곤 합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자신의 잘못은 삶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partial) 범위를 좁히는 반면 타인의 잘못은 삶의 전체(general)로 확대시킵니다. 또 자신의 잘못은 그 순간에 국한된 것이고(temporal) 타인의 잘못은 영구히 지속되는 것(permanent)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이런 자기편향적 사고를 가지고 마음 편하게 살고자 함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현실을 곡해하는 수준이 심각해진다면 문제겠지요.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정문일침이 떠오릅니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다.”(『정확한 사랑의 실험』)

약간 다른 방향으로 흐릅니다만 말 나온 김에 인사청문회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내집단 편향(ingroup bias)과 외집단 편향(outgroup bias), 자신과 동일한 집단에 속한 이에게 우호적이고 외부의 사람들에겐 편견을 가지는 흑백논리적 경향. 삶은 흑과 백 사이의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구성돼 있건만 이분법적 결론으로 귀착합니다. 내편 아니면 주적!

혹시 사회적 비교 편향(social compar ison bias)은 아닌가 우려될 때도 있습니다. 자신보다 뛰어난 타인에 대한 경쟁심 때문에 시기·질투를 가지는 현상입니다. 때로 인간은 뛰어난 인재를 발탁하기보다 자신의 상대적 입지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합니다. 결국 조직 전체가 쇠퇴할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뛰어난 인물을 선택한다면 결국 국격을 높이고 본인 또한 더 나은 세상의 일원으로 살게 될 것인데도 말입니다.

공직 후보자의 능력·자질·도덕성 등 적격성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인사청문회가 자기편향적 인지왜곡 없이 본래의 목적과 기능으로 수행되기를 기대합니다. 벌써 20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제도가 이제는 합리적으로 정착될 때 아닐까요.

하버드대 테레사 애머빌 교수의 말처럼 비판적·부정적 평을 하는 사람이 긍정적 평을 하는 사람보다 더 지적이고 유능해 보이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판을 위한 비판이 심하게 왜곡된다면 전혀 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 주시기를.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참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