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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공무원연금도 바로잡아야 (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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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민연금을 올해 안에 반드시 고쳐야 한다. 마침 국회 국민연금제도개선 특위가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정부와 정치권도 국민연금제도의 개선에 의욕을 보이고 있어 다행이다. 그러자면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그것은 국민연금의 개혁에 맞춰 공무원연금.군인연금.사립학교교직원연금(사학연금) 등의 개혁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무원연금은 1993년, 군인연금은 73년부터 적자가 나기 시작했고, 사학연금은 2026년 기금재원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2047년에 재원이 바닥나는 국민연금에 비해 이들 연금의 재정 상태가 더 나쁘다는 얘기다. 이들 연금은 고쳤어도 진작에 고쳤어야 했는데 지금은 아예 개혁하자는 논의조차 없다. 공무원.군인.교원 등 강력한 이익집단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 연금을 함께 손보지 않으면 국민연금을 개혁할 명분과 국민을 설득할 방법이 없다.

공무원연금은 당장 대수술이 필요하다. 공무원연금은 이미 재원이 거덜나 2001년부터 매년 수천억원의 혈세가 들어가고 있다. 적자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2001년 599억원이던 국고보전액이 지난해에는 6096억원으로 늘었다. 게다가 앞으로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돼 있다. 이 상태로 가면 2007년에 1조4779억원, 2020년에는 13조8126억원을 재정에서 대줘야 한다. 14년 뒤면 경부고속철도(1단계 기준, 12조7300억원)를 깔고도 남을 돈을 공무원연금에 퍼부어야 한다. 국내총생산(GDP)의 1%가량을 공무원들의 노후 보장을 위해 국민이 대준다면 납득할 사람이 있겠는가.

적자가 나면 보험료를 올리든지, 아니면 연금액을 줄이든지 뭔가 대책을 세우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정부는 2000년 적자를 줄인답시고 공무원연금법을 고쳐 국고보전 조항을 집어넣었다. 보험료를 일부 인상하고 연금 수령 나이를 늦추면서 공무원들이 반발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였다.

공무원연금제도를 뜯어보면 적자가 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국민연금을 20년간 부으면 가입 기간 평균소득의 30%를 연금으로 받지만 공무원연금은 소득이 가장 높을 때인 퇴직 직전 3년간 월급의 50%를 받는다. 국민연금은 60세부터 연금을 받지만 공무원연금은 52세(올해 퇴직자)부터 연금을 탈 수 있다. 국민연금은 낸 돈보다 평균 2.22배를 연금으로 받지만 공무원연금은 적게 받는 사람이 3.5~3.9배를 받는다. 심지어 6~7배를 받는 경우도 있다. 오죽하면 민간인 신분인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직원들이 국민연금에서 탈퇴해 공무원연금에 가입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법안을 국회에 내고, 민영화된 철도공사 직원들이 공무원연금에 남게 해 달라며 파업까지 했겠는가.

군인연금도 적자를 보전하느라 연간 6000억원 이상의 국고가 들어가고 있다. 적자는 계속 늘어나 2010년에 1조3078억원, 2030년 2조4162억원으로 국고보전액도 늘어나게 돼 있다. 군인들이 생명이 위협받는 환경에서 근무하고 진급을 못하면 강제 전역하는 등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끝 간 데 없이 적자를 세금으로 메우는 것은 고쳐야 한다.

사학연금도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으로 적립금이 2019년 정점에 달한 뒤 7년 뒤인 2026년에 고갈돼 버린다. 현행법에는 국고보전 조항이 없지만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처럼 적자를 국고에서 메워 달라고 요구하지 않으라는 법도 없다.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개혁에 나서야만 한다.

사정이 이럴진대 공무원연금 등 세 가지 연금을 내버려 둔 채 국민연금만 개혁하라는 것은 너무 염치가 없다. 국민들도 "국민연금의 적자도 국고로 메워 달라"고 나서면 뭐라 할 작정인가.

이들 연금의 개혁을 공무원에게 맡겨 두면 가망이 없다. 국회가 나서야 한다. 국회의 국민연금제도 개선특위의 역할을 확대해 연금 간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근본적인 재정 안정 방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