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원 도박 빚이 9억원으로” 삼성 특채 장애인 스마트폰 8500대 빼돌린 사연

빼돌려진 삼성 연구용 휴대전화 등 범행증거품.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5000만원 도박 빚이 9억원으로…”

2010년 말 장애인 특채 30대 삼성맨 #도박 빚 시달리다 연구용 전화기 손대 #2년간 8억원 벌었지만 현재도 빚 1억원 #공범은 고급 외제차 굴리며 호화생활 # #

2010년 말부터 삼성전자 장애인 특별채용으로 삼성맨이 된 이모(35·구속)씨. 그는 전동휠체어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한 1급 지체장애인이다. 업무는 시료센터에서 연구용 휴대전화기를 받아 연구원들에게 전달하는 단순한 일이었다.

연구용 휴대전화는 일명 ‘시료’로 불린다. 제품 개발이나 문제가 발견된 기존 제품의 연구 등에 사용하는 전화기로 일반 제품과 동일하다. 대신 배터리에 판매 불가 의미의 ‘Not for sale’이라는 영문이 인쇄돼 있다.

경찰에 따르면 착실히 근무하던 이씨는 불법 스포츠도박에 빠졌다고 한다. 이후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제3금융권·불법 사채 등을 끌어쓰다 보니 어느덧 빚이 5000만원에 이르렀다. 고금리의 대출금 상환 압박을 받던 그는 2014년 12월 연구용 휴대전화에 손대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배터리 하단에 판매불가를 의미하는 'Not for sale' 문구가 인쇄돼 있다.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시료센터에서 수령한 연구용 휴대전화의 관리가 반납일도 정해지지 않을 정도로 느슨한 점을 악용했다. 또 이씨는 자신이 탄 전동휠체어는 크기 때문에 검색대도 통과하지 않았다는 점을 악용했다. 이씨는 가방 안에 숨겨 적게는 한 번에 5대, 많게는 70대도 가져 나왔다.

이씨는 수원역의 한 중고 휴대전화 취급점에서 빼돌린 연구용 휴대전화를 현금화하는 데 성공했다. 조모(34·구속)씨가 운영하는 이 소매점은 휴대전화·노트북 등을 맡기면 돈을 빌려주는 IT 전당포도 겸업하고 있었다. 조씨는 이씨에게 매입한 스마트폰을 웃돈을 받고 중고폰 수출업자 등에게 판매했다.

이씨가 2년간 빼돌린 연구용 휴대전화는 모두 8474대로 조사됐다. 중고가 기준으로 25억원으로 추산되는데, 이씨가 벌어들인 범죄수익금은 8억원이다. 장물이다 보니 헐값에 판매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빼돌린 연구용 휴대전화가 현금화된 수원역의 한 중고휴대전화 취급점.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하지만 이씨는 여전히 1억원의 도박 빚이 남아 있다고 한다. 시료를 빼돌려 번 돈을 모두 도박에 탕진하고도 여전히 도박 빚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조씨는 중고폰 수출업자로부터 벌어들인 3억원 중 1억원은 마세라티 차량을 구매하고 나머지는 주식 등에 투자했다고 한다.

이들이 범행은 지난해 말 삼성전자의 내부조사 과정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연구용 휴대전화가 베트남에서 유통된 사실이 확인된 데 따른 조치였다.

모든 휴대전화에는 인간의 지문과 같은 ‘IMEI(International Mobile Equipment Identity)’라고 하는 ‘국제이동단말기식별코드’가 부여돼 있다. 수출입 신고서 작성 때 IMEI 코드를 기재해야 한다. 추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조씨는 이씨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이씨에게 “‘알렉스’라는 가상의 외국인에게 휴대전화를 판매했다고 진술하라”고 모의했지만 결국 덜미가 잡혔다. 경찰은 이씨와 조씨가 이같은 범행을 서로가 먼저 제안했다고 미루고 있어 대질 조사를 통해 밝힐 계획이다.

이재술 경기남부경찰청 외사과장은 “연구용 휴대전화를 건네받아 수출업체에 팔아넘긴 ‘장물아비’ 피의자를 추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이씨 등을 구속했다고 7일 밝혔다.

수원=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