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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마라톤 완주하고 '아프리카에 우물 지어주기' 소망 이룬 27세 청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태훈(27)씨는 지난 4월 30일 오전(현지시간)에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사하라 사막 한복판에 서 있었다. 머리 위에는 ‘SAHARA RACE 2017’이라 적힌 현수막이 펄럭였다. 아침에도 40도를 웃도는 더위에 등에서는 땀이 줄줄 흘렀다. 마라톤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가 ‘탕’하고 울리자 각국에서 모인 참가자 120여 명이 일제히 뛰었다. 박씨도 모래에 푹푹 빠지는 발을 힘겹게 들어 올려 달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과 양갱, 누룽지로 가득 찬 배낭이 다리에 가해지는 무게감을 더했다.

풀코스 경력 없는 초보자 250km 완주 #나흘 만에 발톱 다섯 개 빠져 포기할 뻔 #공모전 휩쓸던 취준생에서 'NGO 지망생'으로

박씨는 2년 연속 아프리카 사막 마라톤에 참가한  ‘초짜 마라토너’다. 기업과 인터넷 펀딩 사이트에 ‘마라톤을 완주하면 아프리카에 우물 한 기를 지을 돈을 후원해 달라’는 요청을 하고 사막을 달린다.

250km 마라톤을 완주한 박태훈씨. [사진 박태훈씨]

250km 마라톤을 완주한 박태훈씨. [사진 박태훈씨]

박씨의 도전은 동아대 도시계획학과 졸업반이던 지난해 방청소를 하며 발견한 노트에서 시작됐다. 고등학교 시절 쓰던 노트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버킷 리스트’가 적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아프리카에 우물 짓기’다. 박씨는 “도덕 시간에 선생님이 아프리카의 물 부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셨는데 그때 써 놓은 것 같다”고 기억한다. 그는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겠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알아봤고 결국 마라톤을 완주해 기부 받은 돈으로 우물을 짓는 방법을 찾아냈다.

운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그에게 사막 250㎞를 완주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첫 마라톤인 지난해 9월 칠레 아카타마 마라톤을 시작하기 6개월 전부터 매일 다리에 모래 주머니를 차고 학교 뒷산을 오르내렸다. ‘이 고생을 왜 하고 있나’ 싶을 때는 등반가 엄홍길 대장에 대한 기사들을 찾아봤다. 박씨는 “엄 대장님이 산을 오르면서 후원 받은 돈으로 오지에 학교를 기부해왔다는 기사를 자극제로 삼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도전한 첫 마라톤(2016년 칠레 아카타마 사막 마라톤)은 실패로 끝났다. 전체 250㎞ 코스 중 170㎞까지 갔을 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인대에 문제가 생겨 더 달릴 수 없다는 의료진의 말에 눈물을 머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6개월 동안 다리 부상을 치료하면서 기업 수십 곳에 손편지를 썼다. “지난 번에 실패했지만 꼭 마라톤을 완주해 우물을 짓고 싶다. 후원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한 번 실패한 경험 탓인지 기업 후원은 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와디즈'에 마라톤 도전 사실을 알린 후 나미비야로 향했다.

나미비야 마라톤은 7일 동안 250㎞를 뛰는 코스다. 첫 날부터 셋째 날까지 매일 40㎞씩을 뛰거나 걷고, 나흘째 되는 날 80㎞를 이동해야 했다. 박씨는 “80㎞를 뛰던 날 발톱 다섯 개가 빠졌다. 그날 기온도 43도를 넘고 레이스 구간이 해안과 근접해서 그야말로 사우나에서 뛰는 기분이었다. 입에 물을 머금다가 뱉어내기를 수도 없이 했다”고 말했다.

박태훈씨가 마라톤 도중 다리에 테이프를 붙이고 있다. [사진 박태훈씨]

박태훈씨가 마라톤 도중 다리에 테이프를 붙이고 있다. [사진 박태훈씨]

박태훈씨가 사막 마라톤 도중 봉지 라면을 먹고 있다. [사진 박태훈씨]

박태훈씨가 사막 마라톤 도중 봉지 라면을 먹고 있다. [사진 박태훈씨]

함께 참가한 외국인들은 대부분 울트라 마라톤(마라톤 경기의 풀코스인 42.195㎞보다 긴 거리를 달리는 마라톤) 경험이 있었다. 평평한 길 위를 뛰는 일반 마라톤과 달리 사막 마라톤은 오목하게 빠진 지형이 많았다. 이곳에 들어갈 때마다 깜짝 놀라는 그를 보고 외국 참가자들이 “다칠 거 같은데 그만 돌아가는 게 어떻겠냐”고 걱정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마라톤 도중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박태훈씨. [사진 박태훈씨]

마라톤 도중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박태훈씨. [사진 박태훈씨]

무려 16명이 나가떨어진 나흘 째 코스도 기어가다시피 통과한 박씨는 결국 250㎞ 완주에 성공했다. 와디즈에는 후원금 100만원 정도가 모였다. 그는 이 돈을 국제구호개발 비영리단체(NPO)인 굿네이버스의 ‘굿워터프로젝트’에 기부해 잠비아 음팡고 지역의 식수위생지원사업에 사용되도록 할 계획이다.

마라톤을 완주한 후 박씨의 장래 계획도 바뀌었다. 그는 원래 '카카오증권' 실전 주식투자에서 월간 1위를 하는 등 다양한 공모전을 휩쓸던 열혈 취준생이었다. 그런 박씨가 “돈을 좀 못 벌더라도 비정비기구(NGO)나 비영리단체(NPO)에서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마라톤을 완주한 후 보름 정도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그는 "방 한 칸을 얻어서 잔 잠비아 현지 주민의 흙집에서 10명 가족이 옥수수 전분 빵과 계란 세 알로 식사를 하는 장면들이 계속 눈에 밟혔다"고 말했다. “풀코스 마라톤도 해본 적 없던 제가 울트라 마라톤을 뛰면서 ‘세상에 안 될 도전이란 없다’는 걸 몸으로 느꼈습니다." 박씨가 힘줘 말했다.

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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