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동아파트 502호' 의혹 수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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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동아파트 502호’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장녀가 이화여고 진학을 위해 위장전입했던 서울 중구 정동아파트 502호를 둘러싸고 의혹이 커지고 있다. 이 아파트에 1995년에서 2010년 사이에 모두 25명이 전입·전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화여고의 관사(官舍)라는 곳에 수십 명이 주소지를 넣다 뺐다 하며 들락날락했다는 얘기인데 참으로 비정상적인 광경이다. 아파트가 '위장전입용 아지트'일 개연성을 배제하기 힘든 정황이다.

국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상습적 위장전입 의혹이 제기된 '502호'는 이화여고 전 교장과 학교법인 이화학원이 전세권을 갖고 있었다. 이 아파트 전입자들은 강 후보자뿐 아니라 대부분 몇 개월 내에 전출했다. 25명 중 여덟 사례는 가족으로 추정되고, 한 가족이 전출한 당일 다른 가족이 전입한 경우도 있다. 가족 중에는 예외 없이 고교 진학을 앞두거나 고등학생인 딸이 포함됐다. 이화여고 진학에 아파트가 조직적으로 동원됐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대목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교육 문제는 매우 민감하다. '정유라 이화여대 특혜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산 까닭은 불법과 편법으로 다른 사람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502호 의혹’은 대규모 부정 행각의 스모킹 건이 될 수 있다. 7일로 예정된 강 후보자의 청문회가 끝나면 덮을 일이 아니다. 어물쩍 넘어가려다 학부모들의 분노가 폭발할 수 있다.

학교의 관사가 특정인들을 위한 위장전입의 허브로 활용됐다면 큰 파문을 부를 사안이다. 위장 전입·전출자가 누구인지, 위장전입 과정과 이화여고와의 관계는 어떠한지, 진학은 실제로 성사됐는지, 모종의 거래 등 불법은 없었는지 갖가지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정의와 공정성이 흔들리면 문재인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도 위협받을 수 있다. “능력 없으면 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정유라씨의 말이 또다시 어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