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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이 달라 신규 투자하고 임금 올려줘도 줄지 않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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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호 20면

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와 진실

충청남도 세종시 남양유업 중앙연구소의 연구원들이 분유 성분을 분석하고 있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연구개발(R&D)에 매출액의 0.5%인 61억5200만원을 투자했다. [사진 남양유업]

충청남도 세종시 남양유업 중앙연구소의 연구원들이 분유 성분을 분석하고 있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연구개발(R&D)에 매출액의 0.5%인 61억5200만원을 투자했다. [사진 남양유업]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6%에 그쳤다. 가계 부채는 1년 새 11% 이상 늘어났다. 성장이 둔화하고 서민 주머니가 쪼그라드는데, 기업들은 유보금을 곳간에 쌓아 두기만 한다.”

주식발행 차액, 이익잉여금 합한 것 #회계기준·상법에 없는 모호한 용어 #쌓아놓은 돈이라는 오해 바꾸려고 #‘세후재투자자본’ 신조어 만들기도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고 임금을 올리지도 않는다. 이런 기업들이 보유한 유보금을 사회로 환수해 노동자·서민 생존에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최근 들어 일부 시민단체나 경제학자, 그리고 정치권 인사들이 내놓는 주장들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유보금은 이른바 ‘기업 사내유보금’을 뜻한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사내유보금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 왔다. 벌어들인 막대한 현금을 기업 내부에 쌓아 놓고 생산적 실물투자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고용 증대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또한 사내유보금을 많이 쌓아 놓은 기업에 대해서는 징벌적 수준으로 과세하는 방향으로 방향으로 법인세제를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분위기다. 사내유보금 수난시대라 할 만하다.

사내유보금이란 말은 사실 회계기준에도 없고 상법에도 나오지 않는 모호한 용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회계상 자본잉여금과 이익잉여금의 합을 의미한다. 자본잉여금은 주식의 액면가액 이상으로 투입된 자본을 말한다. 회사가 신주 1주를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실시하는데, 발행가액이 1만5000원(액면가액은 5000원)이라고 해 보자. 재무상태표에서 증가하는 자본은 1만5000원이다. 발행가액인 1만5000원을 주주가 회사에 불입하고 주식 1주를 취득하기 때문이다.

이때 증가하는 자본 1만5000원을 세부적으로 더 나눠 보면 액면가액 5000원은 자본금 계정 증가액, 액면가액을 초과하는 금액 1만원은 자본잉여금 계정 증가액이 된다. 신주를 10주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한다면 자본은 15만원(1만5000원*10주)이 증가한다. 그리고 자본 계정 내에서 자본금이 5만원(5000원*10주), 자본잉여금이 10만원(1만원*10주) 증가하는 것으로 기록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액면가를 초과한 발행가로 증자를 한다면 이처럼 자본잉여금은 증가한다.

한편, 회사는 해마다 연말에 손익 결산을 하면서 손익계산서에 당기순이익을 산출해 낸다. 그리고 이 당기순이익은 자본 내 이익잉여금이라는 계정으로 이동해 누적된다. 만약 결산 결과 당기순손실이 발생했다면, 자본 내 이익잉여금 누적치는 당기순손실 금액만큼 줄어든다. 따라서 회사의 재무상태표 내 자본항목에 나타난 이익잉여금은 회사가 설립 이래 지금까지 얼마만큼의 당기순이익을 창출했는지 그 누적수치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하면 된다. 참고로, 이익잉여금은 배당을 하면 그만큼 감소한다. 즉 배당은 이익잉여금의 처분으로 회계처리된다. A사가 2011년 초부터 사업을 시작, 매년 10억씩 6년간 당기순이익을 꾸준히 냈다면 2016년 말 이 회사의 재무상태표에 기록된 이익잉여금 금액은 배당이 없었다고 가정하면 60억원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자본 내의 두 가지 계정, 즉 이익잉여금과 자본잉여금의 합인 사내유보금에 대해 왜 시민단체와 정치권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사내유보금을 기업이 쌓아 둔 현금(또는 현금성 자산)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내유보금이 증가하면 기업이 투자를 감소시켰거나 회피해 온 것으로 해석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판단은 오류이자 오해일 가능성이 크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번 돈을 모두 투자하거나 임금 인상에 사용해도 사내유보금은 계속 증가할 수 있다.

유보금 142조 삼성전자, 보유현금은 5조

반도체장비 제조회사 B가 있다. 창업자는 2011년초 설립시 자본금으로 10억원을 출자했고, 이 자금으로 초기 영업에 필요한 각종 설비자산을 갖췄다. 회사는 이후 3년간 매년 2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재무상태표의 이익잉여금 수치는 매년 기록한 당기순이익의 누계이므로 2013년 말 회사의 이익잉여금은 60억원이 됐다.

회사는 외상 없이 현금으로만 거래해 이익잉여금을 모두 현금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표 1의 왼쪽> 2014년 중에 B사는 늘어나는 주문에 대응하기 위해 50억원을 들여 신규설비투자를 단행했다.

그렇다면 이 회사의 재무제표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현금을 지급하고 신규설비를 매입하였으므로 자산 항목 내에서 현금자산이 감소하고 대신 유형자산(건물)이 생겼다. 회계처리는 이것으로 끝이다. 즉 현금을 사용해 실물에 투자했지만 자본 내 이익잉여금에는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표 1의 오른쪽>

이처럼 재무상태표 자본 내에 기재되어 있는 이익잉여금을 기업 내부에 쌓아둔 현금으로만 단정해서는 안된다. <표 1>의 왼쪽에서는 현금자산의 형태로 존재했다. 하지만 오른쪽에서 보면 50억원은 설비자산으로 바뀌었고 10억원만 현금자산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이익잉여금, 즉 사내유보금 수치는 60억원 그대로다.

만약 B사가 2014년 손익결산에서 또 20억원의 당기순이익(회사가 현금거래만을 하여 당기순이익이 모두 현금이라고 가정)을 냈다면, 2014년 말 회사의 재무상태표는 <표 2>와 같이 된다. 회사가 2014년 중 50억원이나 들여 설비투자를 단행했지만, 2014년 말 사내유보금은 20억원이 더 늘어나 80억원이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유보금을 80억원이나 쌓아 놓고 왜 투자를 하지 않느냐고 말할 수는 없다. 회사가 보유한 현금은 30억원뿐이다. 2013년 말 60억원에서 2014년 중 50억원을 투자에 사용하고, 2014년 중 새로 20억원을 벌어들였기 때문이다. 2014년 말의 사내유보금 80억원과 현금보유고 30억원과의 차이 50억원은 설비투자자산 형태로 존재하는 셈이다.

삼성전자의 올 1분기 재무상태표(별도기준)를 보면 이익잉여금의 합계액은 약 142조원이다. 그런데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의 규모는 약 4조8000억원뿐이다. 차액인 약 137조원은 설비(기계장치)나 건물 등의 유형자산에 50조원, 사업목적 등으로 다른 회사 지분에 투자한 금액 55조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사내유보금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의 형태뿐 아니라 각종 투자자산·유형자산·무형자산·재고자산·당좌자산 등의 형태로도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남양유업의 2016년 말 재무상태표(별도기준) 자본항목의 구성내역을 살펴보면 이익잉여금은 8982억원이지만, 현금 및 현금성자산 보유액은 771억원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회사가 지금까지 투자를 게을리 해 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배당에 인색하면 유보율 높아질 가능성

또한 사내유보금의 증가를 기업의 투자 감소로 해석할 경우 오류에 빠질 수 있다. 2015년 중 제품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 B사가 트럭을 10억원만큼 구매하면 자산항목에서 현금이 줄고 차량운반구(트럭)라는 유형자산이 증가할 뿐 자본항목의 이익잉여금이나 자본잉여금에는 변화가 없다. 유보금 수치는 그대로인 것이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는 사실 용어 그 자체 때문에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 ‘유보’라는 단어에는 투자나 임금 인상, 배당 등 기업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회사 내부에 미루어 둔다는 뉘앙스가 풍긴다. 또 ‘금(金)’이라는 단어가 붙어, 마치 ‘유보액=현금’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벌기만 하고 배당에 인색하다면 사내유보금 수치가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다. 과도한 사내보유율 속에는 인색한 배당정책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창출한 이익 이상으로 배당을 지속하는 경우는 없으므로 회사가 건실하게 이익을 내고 적절한 배당을 해도 유보금은 충분히 증가한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위에서 언급한 삼성전자나 남양유업이라는 회사가 얼마나 배당에 적극적인지는 자본변동 내용이나 이익잉여금처분표 등을 통해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가 빈발하자 한국회계기준원에서는 지난해 6월부터 한국회계학회 소속 교수 등 관련 전문가들과 대체용어 개발을 논의했다. 이를 통해 기준원에서는 최종적으로 ‘세후재투자자본’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세후재투자자본은 세금을 이미 납부한 금액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영업활동을 통해 조달된 자본이 다시 여러 형태로 재투자되었음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에 대한 권리는 주주의 몫(자본)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내유보금의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바뀐 용어가 사내유보금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를 얼마나 해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내유보금이 됐건, 세후재투자자본이 됐건, 중요한 것은 손익계산서와 재무상태표 계정에 대한 이해다. 용어의 변경만으로 의미를 전달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김수헌 글로벌모니터 대표
이재홍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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