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가 지난해 10월부터 인천 연수구 청학동에 위치한 외국인 묘 66기를 인천가족공원으로 이장하는 작업이 한창이던 지난달 초. 한 미국인의 묘에서 성인 손가락만 한 크기의 작은 십자가가 발견됐다.
소식을 접한 인천시립박물관 조우성(67) 관장은 한달음에 현장을 찾았다. 십자가를 본 조 관장은 가슴이 벅찼다고 했다. 개항 당시 인천에서 활동한 외국인들의 실물자료가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개항 당시 외국인들의 활동상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외국인 묘 이장 중 '엘리 랜디스' 십자가 #개항 100년 불구 실물자료는 처음 나와 #인천 개항역사 찾기 나선 조우성 관장 #"인천 개항 시기 외국인 생활 재조명 기회"
지난달 29일 기자와 만난 조 관장은 “개항 100년이 넘었음에도 당시 인천에서 활동한 외국인들의 생활상을 담은 자료 하나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며 “이 십자가는 단순한 장신구가 아닌 개항 당시 외국인들의 활동상을 연구할 수 있는 물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십자가의 주인공은 인천 개항 당시 한국을 찾아 의료봉사를 하다 숨진 미국인 의료 선교사 엘리 랜디스(Eli B.Landis·1865~1898)다.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 출신으로 1890년 인천 제물포에 들어왔다. 이후 주거지 인근에 시약소(施藥所·약국)를 열었다. 인천 최초의 서양병원인 성누가병원이 설립되자 ‘낙선시의원(樂善施醫院)’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선행을 베풀어 기쁨을 누리는 병원’이라는 의미다.
그는 이 병원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의료 활동을 폈다. 야간학교를 운영하며 영어도 가르쳤다. 불교 경전을 번역하기도 했고, 한국학을 연구하기도 했다. 당시 인천지역 주민들은 그를 ‘의료계의 큰 어른’이란 뜻의 ‘약대인(藥大人)’이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 온 지 8년째 되는 해에 지병을 앓다 33세라는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조 관장은 랜디스에 대한 짧은 이력을 파악한 뒤 미국 대사관에 십자가와 함께 한 장의 공문을 보냈다.
조 관장은 “묘에서 발견된 소장품은 유족에게 돌려주거나 유족이 없으면 해당 국가의 대사관 소유가 된다”며 “개항 당시의 역사, 외국인들의 활동상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라고 호소해 기증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미 대사관은 흔쾌히 동의해 줬다고 한다.
조 관장은 “십자가 뒤쪽에 라틴어로 ‘자비’(The MISERICORDIA·미세리코르디아)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는데 그가 왜 약대인으로 불렸는지 알겠다”며 “그는 단순히 한국에 왔다 숨진 외국인 선교사가 아닌 인천의 주요 역사적 인물 중 한명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관장은 평소에도 개항사에 관심이 많았다. 2015년 시립박물관장에 임명된 이후 개항 역사에 대한 연구 추진도 계획했다. 인천 출생에 인천 지역신문 기자 출신인 그에게 인천의 역사, 개항의 역사는 늘 연구 대상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 관장은 “2020년 인천뮤지엄파크가 조성되는데 개항 당시의 인물을 기리는 전시관(가칭 개항관)을 만들어 랜디스의 십자가를 전시할 것”이라며 “낯설고 물선 외국 땅에 와 헌신적으로 제물포지역 주민들과 함께 살았던 랜디스를 비롯한 외국인들의 역사를 담은 인천의 개항 역사를 새롭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