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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지서 개에 물려 전치 6주...법원 '부주의한 피해자 과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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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회룡]

[일러스트 김회룡]

사유지에서 행인을 물어 6주간의 상해를 입힌 개의 주인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청주지법 형사항소1부(구창모 부장판사)는 28일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개 주인인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사유지인 만큼 주의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피해자 과실이 커 개 주인에게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지난해 일어났다. 청주에 사는 A씨는 지난해 2월 27일 오전 8시 49분쯤 지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원구의 한 상점 앞 인도와 상점 사이의 완충녹지 끝자락을 가로질러 걸었다. 이곳은 울타리나 장애물이 없어 평소에도 많은 행인들이 자유롭게 통행로로 이용했다.

A씨는 이 완충녹지 한편에 상점 주인 B씨가 개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개가 갑자기 A씨의 바짓단을 물고 늘어졌고, A씨는 중심을 잃고 넘어져 꼬리뼈가 골절되는 등 전치 6주의 상처를 입었다.

검찰은 "불특정 다수가 통행하는 곳에서 개를 키울 때는 행인들이 알 수 있도록 조처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데, 이를 게을리했다"며 개 주인 B씨를 과실치상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1심에서는 개 주인 B씨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사고 발생 지점이 일반인도 통행할 수 있도록 관리된 만큼 피고인은 목줄을 짧게 해 개가 사람을 물지 않도록 관리했어야 한다'며 B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B씨는 이에 항소했다. '사유지를 통과하면서 개집이나 개의 존재를 확인하지 않고 부주의하게 지나가다가 발생한 사고로, 피해자 과실'이라는 주장에서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과 달리 개 주인 B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고가 발생한 길은 피고인이 일반인들의 통행에 편의를 제공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통행자유권이 인정되는 일반 공중의 통로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당시 개의 목줄 길이가 길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이 사고는 개의 소유·점유자의 관리상 과실이 아니라 길을 잘못 들어 남의 집 마당에 들어서고, 부주의하게 개에게 근접한 사람의 실수로 봐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중대한 과실이 인정돼 피고인에게 형법상 과실치상의 죄책을 물을 수 없다"며 "다만 민사상 책임을 묻는 것은 별론으로 한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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