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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리뷰] '네루다' 전기 영화의 모범 사례!

중앙일보

입력

네루다

감독 파블로 라라인 출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루이스 그네코, 메르세데스 모란 각본 기예르모 칼데론 촬영 세르지오 암스트롱 편집 에르베 슈나이드 음악 페데리코 쥬시드 장르 드라마 상영 시간 107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

칠레 출신 파블로 라라인(41) 감독의 신작이다. 라라인 감독은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당시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나탈리 포트먼)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그린 ‘재키’(2016)로 주목 받았다. 흥미로운 건 ‘네루다’와 ‘재키’를 거의 동시에 작업했다는 것. 두 영화는 실존 인물의 인생 전체를 다루려는 야심을 버리고, 가장 극적인 순간에 집중해 정수를 뽑아낸 게 닮았다. 그러나 접근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재키’가 포트먼의 클로즈업한 얼굴에 고통의 서사를 써내려갔다면 ‘네루다’는 칠레의 전설적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루이스 그네코)의 삶에 상상의 인물을 더해 그를 거울삼아 이야기를 풀었다.

1948년 공산당 상원의원이던 네루다는 의회에서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난해 체포 영장이 떨어지자 1년 넘게 도피 생활을 벌였다. 이 시기는 네루다의 삶에서 가장 암흑기였고,『모두의 노래』라는 걸작 시집을 남긴 때였다. 영화는 상상의 인물인 비밀경찰 오스카(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가 네루다를 쫓는 이야기를 한편의 로드 무비처럼 펼쳐낸다. 정부 편에 서서 네루다를 조롱하던 오스카는 그의 삶과 문학을 조사하면서 점차 그에게 빠져든다.

영화 '네루다'에서 파블로 네루다를 연기한 루이스 그네코 

영화 '네루다'에서파블로 네루다를 연기한 루이스 그네코

영화는 오스카란 인물을 현실과 상상의 경계 위에서 모호하게 묘사한다. 그러다보니 오스카는 다양한 상징으로 읽힌다. 처음엔 네루다를 억압하던 파시즘의 앞잡이로 보이다가, 점차 네루다의 시를 통해 자각하고 위로받는 칠레의 민중으로 보인다. 그리고 어느 순간엔 네루다의 시집에 등장하는 캐릭터로서 그의 문학 세계를 대변하는 것처럼 읽히는데 끝내는 민중의 아들로 태어나 고통과 고독 속에 살았던 네루다 자신처럼 보인다. 감독의 영화적 상상, 혹은 네루다식의 문학적 상상이 영화를 이토록 다층적으로 해석하게끔 만드는 것이 놀랍다.

라라인 감독은 영화 제목이 ‘네루다’임에도 불구하고 가엘 가르시엘 베르날을 첫번째 크레딧에 올렸다. 결국 감독은 네루다라는 시인보다 그를 통해 칠레의 격변의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야기는 독창적이고 연출은 실험적인데, 촬영은 유려하고 음악은 우아하다. 전기 영화의 모범 사례로 꼽고 싶다.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

TIP ‘일 포스티노’(1994,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까지 보면 네루다 도피생활 완전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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