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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테러' 일어난 날…인권 논란, 日 테러방지 법안 중의원 통과

중앙일보

입력

지난 23일 '공모죄' 법안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일본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도쿄 AP=연합뉴스] 

지난 23일 '공모죄' 법안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일본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도쿄 AP=연합뉴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강력히 추진 중인 테러방지법안, 이른바 ‘공모(共謀)죄’ 법안이 지난 23일 하원 격인 중의원에서 가결됐다.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에선 오는 29일부터 심의에 착수할 예정이다.
테러를 모의 단계에서부터 적극 적발해 처벌하겠다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일본 정부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있어 테러방지 대책 입법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왔다.

'공모죄' 법안 가결…29일부터 참의원 심의 #아베 정권 "2020년 도쿄올림픽 대비 목적" #야권 "양심의 자유 침해"…시민 1500명 시위 #유엔특별보고관 "프라이버시 제한" 비판

그러나 야권과 시민사회의 반발이 거세다.
수사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법을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앞서 민진당 등 야 4당은 법안 강행에 맞서 가네다 가쓰토시(金田勝年) 법무상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강경 자세를 취했다.
이날 중의원 본회의장에서도 야당 측은 “마음(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표결 강행 처리에 극렬히 저항했다고 아사히신문은 24일 전했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 1500여 명이 시위를 벌였다.

공모죄 법안은 과거에도 세 차례 발의됐다. 하지만 자민·공명 연립여당 내에서도 이견이 있어 중의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일반 시민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논란거리였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법무위원회 심의 때 “조직적 범죄집단에 속하지 않는 ‘일반인’은 조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반인에 대한 해석 기준이 애매하다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밝힌 일반인의 기준은 “통상의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테러 준비행위에 대한 해석도 논란이다.
지난달 법무위에서 가네다 법무상은 “벚꽃 구경을 위해 맥주·도시락을 갖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범죄의 경우) 예비 준비로 지도·쌍안경·수첩 등을 갖고 있는 (외형적인 상황만으로도 ‘준비행위’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사히는 “결국 (수사 대상자의) 마음 속을 조사하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라면서 “무엇을 죄로 묻는 것인지 모르는 섬뜩한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법안이 정한 중대범죄 행위가 277개에 달해 처벌 대상이 모호하다는 점도 거론된다.
민진당의 렌호(蓮舫) 대표는 “법안의 구조, 여닫이 자체가 상당히 혼란한 모양새”라고 일갈했다.
국제사회에서도 이 법안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조세프 카나타치 유엔 인권이사회 사생활보호권 특별보고관은 지난 18일 아베 총리에게 반대 서한까지 보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권과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정부는 다음달 18일 정기국회를 마치기 전까지 참의원에서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회기를 연장할 경우 7월 2일로 예정된 도쿄도의원 선거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민당 우위의 예년 선거와 달리 이번 도의원 선거에서는 고이케 유리코 (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이끄는 신생 지역정당 ‘도민우선모임’의 약진이 예상된다.
지난 22일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도민우선모임의 지지율은 22%로 자민당(25%)과 접전 중이다.

유럽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테러가 공모죄 통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법안이 중의원을 통과한 날 영국 맨체스터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일어나 최소 22명이 숨졌다.
자민·공명 연립여당 측이 향후 참의원 심의 과정에서 이 같은 대외 분위기를 활용할 것이란 관측이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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