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대통령돼 퇴임후 오겠다"-文 대통령, 노 전 대통령 추도식서 밝혀

중앙일보

입력

23일 오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이 열리기 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모습. 송봉근 기자 

23일 오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이 열리기 전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모습. 송봉근 기자

말 그대로 인산인해(人山人海)였다.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 전국에서 5만여명(오후 4시 기준 노무현재단 추산)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 봉하마을은 오전 9시 전후로 차량 3000여대를 댈 수 있는 주차장이 거의 꽉 차버렸다. 일부 추모객은 하루 전날 봉하마을에 도착해 차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 최영란(여·60·서울 관악구)씨는 “서울에서 어젯밤에 도착해 봉하마을에서 자고 자원봉사 등을 하며 주민과 함께 아침을 먹었다”며 “추도식에 꼭 참석하고 싶었기에 고생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인근에 추모객이 몰려 있다. 위성욱 기자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인근에 추모객이 몰려 있다. 위성욱 기자

추도식은 오후 2시 시작됐지만, 추모객의 발길은 오전 일찍부터 이어졌다. 봉하마을에 들어가는 차량 통제로 추모객들은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영공설운동장에 몰렸다. 오전 11시부터 공설운동장에는 100여 m가 넘는 긴 줄이 생기고, 15분마다 운행 예정이던 셔틀버스는 봉하마을로 들어가는 도로가 막히면서 30분 이상씩 걸리기도 했다.

23일 오후 열린 노 전 대통령 추도식 인산인해 #문 대통령 당선 여파로 여야 정치인 대거 참석

셔틀버스를 기다리던 추모객들은  삼삼오오 노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이야기를 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노영선(여·48·경기도 수원시)씨는 “노 전 대통령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마음의 빚이 있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돼 그 빚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린 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추도식에 왔다”며 “올해 추도식을 계기로 그동안의 슬픔을 털고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말했던 ‘사람 사는 세상, 나라다운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23일 김해 진영공설운동장에서 봉하마을로 이동하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추모객들. 위성욱 기자

23일 김해 진영공설운동장에서 봉하마을로 이동하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추모객들. 위성욱 기자

23일 김해시 진영읍 도로 곳곳에 차를 세워두고 봉하마을로 걸어가는 추모객들. 위성욱 기자

23일 김해시 진영읍 도로 곳곳에 차를 세워두고 봉하마을로 걸어가는 추모객들. 위성욱 기자

봉하마을로 오가는 왕복 4차로는 길 양쪽에 주차된 차량으로 정체가 심했다. 자가용을 타고 온 추모객은 봉하마을에서 4~5㎞ 떨어진 본산공단 관리사무소 인근 등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가야 했다. 도로 옆 인도에는 추모객의 긴 행렬이 이어졌다.

23일 봉하마을 입구 임시 주차장에 꽉 들어찬 차량들. 위성욱 기자

23일 봉하마을 입구 임시 주차장에 꽉 들어찬 차량들. 위성욱 기자

봉하마을에 들어서자 마을회관부터 노 전 대통령 생가와 추모의 집, 묘역까지는 추모객의 머리 부분만 보일 정도로 붐볐다. 기호 1번 문재인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거나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색 옷이나 노란 바람개비 등을 들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검은색 옷을 입고 묘역에 국화꽃을 놓으며 참배하는 추모객도 잇따랐다. 추모의 집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추모객도 많았다. 남정택(62경남 고성군)씨는 “해마다 추도식때면 이곳을 찾아왔는데 오늘은 특별한 기분이 든다”면서 “묵념을 하며 노 전 대통령이 못다 이룬 꿈을 문재인 대통령이 이뤄달라고 기원했다”고 말했다.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인근에서 추모객들이 문재인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위성욱 기자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인근에서 추모객들이 문재인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위성욱 기자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머물렀던 사저 입구도 마찬가지 였다. 문 대통령 내외와 권양숙 여사,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 봉하재단 관계자 등이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추모객들은 문 대통령이 사저에서 나와 추도식장까지 걸어갈 1㎞정도의 길 양옆에 도열한 채 1시간 넘게 기다렸다. 오후 2시가 임박해 문 대통령이 사저에서 나오자 추모객들은 “문재인~문재인~”을 연호했다. 대통령이 지나가며 악수를 하거나 시선을 마주치면 “와~”하는 함성으로 응원했다.

오후 2시 추도식이 임박하자 추도식장엔 2만5000여명(노무현재단 추산)이 들어서 이동 조차 쉽지 않았다. 일부 추모객은 자리가 없어 발걸음을 되돌리기도 했다. 대신 봉하마을 방앗간 인근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으로 추도식을 지켜봐야 했다.

노건호씨, 권양숙 여사, 문재인 대통령, 김정숙 여사 등이 추도식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노건호씨, 권양숙 여사, 문재인 대통령, 김정숙 여사 등이 추도식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8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이렇게 변함없이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해 주셔서 감사 말씀 드린다. 제가 대선 때 오늘 이 추도식에 대통령으로 참석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신 것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일부 추모객은 문 대통령의 인사말 중간에 박수를 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노 대통령님 당신이 그립습니다. 보고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임기동안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다”며 “현직 대통령으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돼 다시 찾아뵙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장에서 문재인 대통령 등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장에서 문재인 대통령 등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이어 건호씨가 단상에 오르자 곳곳에서 웅성거렸다. 건호씨가 삭발을 한 모습이어서다. 건호씨는 이를 의식한 듯 “탈모로 인해 삭발하게 됐다. 건강상 문제는 없다. 정치적인 의사표시가 아니고 사회에 불만 있는 것도 아니다. 종교적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어 “아버님께서 살아계셨다면 이런 날에 막걸리 한 잔 하자고 하실 것 같다”면서 “아버님이 사무치게 그리운 날이다. 모든 국민들께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어머니 권 여사는 눈물을 흘렸고, 문 대통령도 눈물을 참으려는 듯 하늘을 쳐다봤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헌화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헌화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추도식은 문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내빈들이 대통령 묘역을 참배를 하는 것으로 끝났다. 추모객들은 문 대통령이 차량을 타고 봉하마을 빠져나갈 때까지 “문재인 대통령 사랑해요~, 대통령님 꼭 성공한 대통령이 되세요~”라는 말을 외쳤다.  김해=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