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석유 채굴 강행 땐 전쟁” … 필리핀 “전쟁 위협 유엔 제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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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필리핀 관계가 다시 악화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최근 “전쟁 불사” 발언 때문이다.

중국과 필리핀 관계 다시 악화 조짐 #남중국해 자원개발 놓고 공방 재개

21일 홍콩 명보에 따르면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지난 19일 다바오시에서 열린 해안경비대 행사에서 시 주석의 최근 필리핀 관련 발언을 뒤늦게 폭로했다. 시 주석이 지난 15일 베이징 일대일로 정상포럼 때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필리핀이 남중국해 분쟁 해역에서 필리핀이 석유 시추를 강행할 경우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언급했다는 것이다.

지난 1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필리핀 양국 정상회담에 앞서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로드리고 두테르테(왼쪽) 필리핀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AP=베이징]

지난 1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필리핀 양국 정상회담에 앞서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로드리고 두테르테(왼쪽) 필리핀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AP=베이징]

양국 정상 회담 당시 두테르테 대통령은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 중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속하는 리드 뱅크에서 석유 탐사에 나설 계획을 통보했다. 이에 시 주석은 “그건 안된다. 그곳은 우리 해역”이라고 주장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우리는 (헤이그) 중재법정의 판결을 갖고 있다”고 반박했고, 시 주석은 “맞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적 권리를 갖고 있다. 당신들은 최근 판결만 가졌을 뿐”이라며 명(明)대 정화(鄭和)의 남중국해 원정을 언급하면서 중국 해역이라고 주장했다.

두테르테는 다시 “그 역사는 필리핀 국민 입장에선 생소하다”며 “필리핀은 중국 관할이었던 적이 없다”고 응수했다. 그러자 시 주석이 “우리는 친구다.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만, 만일 계속 (시추를) 추진한다면 전쟁을 시작할 수 있다”며 “필리핀과 전투할 수 있다”고 강력한 경고를 내놓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 어네스토 아벨라 필리핀 대통령실 대변인은 20일 “중국과 필리핀 서해 해역에서 석유 시추 가능성을 놓고 허심탄회한 토론을 진행했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양국 정상 간 논쟁을 시인했다. 성명은 “남중국해 분쟁의 복잡성에 비춰 양국은 평화로운 방식으로 분쟁 해결 방안을 찾고 양국의 주권과 경제적 권익을 만족하게 하겠다는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은 중국과의 전쟁을 감당할 여력이 없고 전쟁은 인명피해를 초래하기 때문에 전쟁을 벌이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안토니오 카르피오 필리핀 대법관이 시 주석의 전쟁 위협에 대해 유엔 제소를 주장하면서 양국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카르피오 대법관은 20일 “유엔 헌장에 따르면 무력으로 국가 간 분쟁 해결을 시도하겠다는 위협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두테르테 대통령이 항의하지 않는다면 필리핀이 EEZ를 수호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고 마닐라타임스가 21일 전했다. 카르피오 대법관은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의 남중국해 재판에 필리핀 법률팀으로 참가했다.

헤이그 중재법정은 지난해 7월 “필리핀은 리드뱅크를 포함하는 스프래틀리 군도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채굴 권리를 갖고 있다”고 판결했다. 카르피에 대법관은 “시 주석의 위협은 유엔 헌장과 유엔 해양법협약, 동남아시아우호협력조약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며 “국제 중재법정에 별도로 제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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