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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통영항’ 그림은 어디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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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호 29면

노무현 전 대통령 주문으로 제작돼 2006년 청와대 인왕실에 걸렸던 고(故) 전혁림 화백의 ‘통영항’. [중앙포토]

노무현 전 대통령 주문으로 제작돼 2006년 청와대 인왕실에 걸렸던 고(故) 전혁림 화백의 ‘통영항’. [중앙포토]

“그림이 어디 있는지 소재라도 알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이환(82) 이영미술관 관장은 집 나가 소식 없는 자식 걱정하듯 한숨부터 내쉬었다. 엊그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 ‘거울 방’ 얘기를 듣고 부쩍 근심이 많아졌다. 서울 종로구 청와대로 1번지, 청와대가 새 주인을 맞으면서 이런저런 비화가 흘러나오니 김 관장의 해묵은 상처가 덧나 버렸다.

김 관장이 찾는 그림 사연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11월, 그가 후원하던 원로 화가 전혁림(1915~2010)의 신작전 ‘구십, 아직은 젊다’가 경기도 용인 이영미술관에서 열렸다. 경남 통영 출신인 전 화백은 구순이 넘어서도 젊은이 저리 가랄 힘으로 화폭에 붓을 휘둘러 큰 화제가 됐다. 이 소식을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보게 된 당시 노무현(1946~2009) 대통령은 예고도 없이 전시장을 직접 찾아 화가를 격려하고 작품을 감상했다. 노 전 대통령은 통영의 쪽빛 바다색과 다도해 모습이 인상적인 ‘한려수도의 추상적 풍경’ 앞에 오래 머물며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작품을 구입해 청와대 접견실인 인왕실(당시 인왕홀)에 걸기를 원했으나 워낙 대작이라 벽면 크기가 맞지 않았다. 결국 새로 그림을 주문했고 전 화백은 3개월에 걸쳐 가로 7m, 세로 2.8m인 1000호 크기 신작 ‘통영항’을 그려 이듬해 3월 청와대로 보냈다.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찾는 외국 귀빈을 꼭 이 그림 앞에 모셔 한반도 국토의 아름다움을 설명했고, 국외 사절 대부분이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소장 그림 자랑이 우리나라의 문화 힘을 보여주는 지름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김이환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 가격심의위원회는 ‘통영항’의 가격을 2억 3000만원으로 산정했으나 전 화백이 대통령이 청와대에 걸 그림이니 1억 5000만원을 받아도 만족한다며 깎아 줬다”고 회고했다. 이렇듯 정성과 배려로 마련된 그림이었지만 이명박(76) 정부가 들어서면서 작품은 사라져 버렸다. 새 대통령의 취향 문제라 하더라도 ‘통영항’이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린 공을 생각하면 아쉬운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이 그림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정부미술은행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짐작하지만 소재가 묘연하다. 김 관장은 “수소문해 가능하다면 다시 사서 옆에 두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국내에서 전혁림 화백 작품을 전문으로 컬렉션한 미술관으로 꼽히기에 전 화백 말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통영항’을 소장 목록에 되살리겠다는 희망인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청와대를 이전한 뒤 그 자리에 서울역사문화벨트를 만들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청와대 자리를 박물관과 공원 등으로 조성하겠다는 그 약속이 지켜진다면 ‘통영항’이 그 전시실 목록에 들어갈 이력은 풍부하다. 대통령, 화가, 화상이 일궈낸 인연이 곁들여진다면 새 정부가 지향하는 문화국가의 한 상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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