脣亡齒寒 <순망치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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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호 29면

‘대진제국(大秦帝國)’ 시즌 3 ‘굴기(起)’편이 올 초 중국에서 방영됐다. 진(秦) 소왕(昭王, 기원전 324~251)의 치세를 다뤘다. 양회 개막 전날이던 지난 3월 1일 시진핑·리커창·후진타오·원자바오 등 전·현직 최고 지도자 이름이 조(趙)나라에 잠복한 간첩 명단을 적은 죽간(竹簡)에 적힌 채 방영돼 구설에 올랐다. 진·제(齊)·초(楚)·연(燕)·한(韓)·조·위(魏) 전국칠웅(戰國七雄) 군왕의 쟁탈전이 역동적으로 펼쳐진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 논리가 2회에 나온다. 진 무왕(武王)의 장례식에 특사가 쇄도했다. ‘한국(韓國)’은 상근(尙)을 특사로 보낸다. 상근이 막 등극한 소왕에게 간청했다.

“한은 진의 병풍입니다…. 요즘 초나라가 병사를 일으켜 변방을 포위하니 왕이 여러 차례 진나라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귀국은 여전히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서둘러 출병해 포위를 풀어주기를 청합니다.”

무왕의 어머니 혜문후(惠文后)가 흔쾌히 대답한다. “진나라는 본래 귀국에 응당 도움을 줘야….”

소왕의 부친인 혜문왕(惠文王)의 후궁 선태후(宣太后) 미팔자(八子)가 혜문후의 말을 가로챈다. “누이, ‘한국’ 특사의 말을 들으니 선왕의 일이 생각납니다. 이전에 본궁이 선왕을 모실 때 왕이 내 옆에 기대니 피곤함과 고단함이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선왕이 몸 전체를 내 몸 위로 누우니 본궁은 도리어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더이다. 그건 나한테 좋은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궁이 옛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평범한 도리를 말하려는 겁니다. 무슨 좋은 점이 있습니까.”

선태후는 선왕과의 잠자리까지 노골적으로 언급하며 ‘한국’의 간청을 매몰차게 거절했다. 어려움을 감당케 할 이익이 없는 전쟁에는 참전하지 않겠다는 논리다.

얼마 전 순망치한을 내세운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논평에 반박한 중국 논리가 매한가지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 배치와 비용 문제로 미·중 사이에 끼인 한국도 ‘한국’ 신세다. 강국 진·초·제·위에 시달리던 한국은 기원전 230년 칠웅 중 가장 먼저 진에 멸망했다. 순망치한의 역설이다. 입술은 이빨이 깨문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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