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국 법관대표회의 개최 수용 … “사법행정 방식 환골탈태, 의견 듣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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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양승태(사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한 입장을 공개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양 대법원장은 17일 법원 내부 전산망에 올린 입장문을 통해 “이번 사태를 맞아 사법행정의 방식을 환골탈태하려고 한다”며 “계획에 앞서 전국 법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문제점과 개선책을 토론할 장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009년엔 1박2일 진행 … 내달 열릴 듯

최근 지방법원에서는 판사들이 잇따라 회의를 열고 대법원에 전국법관대표회의 개최를 요구했다. 양 대법원장의 입장문은 이에 대한 수락 의사 표명이다. 전국법관대표회의 개최는 2009년 신영철 당시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 논란 때가 마지막이었다.

양 대법원장이 언급한 ‘이번 사태’는 지난 2월 불거진 국제인권법연구회 행사 축소 의혹 사건이다. 법원 내 최대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전국 법관 500여 명을 상대로 ‘사법 독립과 법관 인사제도’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지난 3월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계획을 세웠다. 이후 법원행정처가 이를 방해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지난달 이인복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위원회는 이모(55)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이모(39) 심의관에게 행사 축소를 권유했다고 결론 내렸다.

조사위가 “법원행정처 차원의 조직적 개입은 없었다”고 발표하고 대법원이 관련자를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에 회부하기로 했지만 판사들의 불만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지난 4월 서울동부지법을 시작으로 서울중앙지법·인천지법·대전지법 등 12개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열렸다.

양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의 한 단독판사는 “우선 판사들과 소통하고 사법부 내 병폐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대법원장의 인사권 독점과 법원행정처의 과도한 권한 등의 문제까지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수도권 법원의 배석판사는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만 한 차례 회의를 여는 것만으로 사법부 내 고질적인 문제를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향후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지속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는 전국법관회의 명칭과 참석자 규모, 일정을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해 정할 계획이다. 2009년에 열린 회의는 ‘전국법관포럼’이란 명칭으로 1박2일간 진행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참석자 선정 등 구체적인 방법은 법관들 의견을 따르고 행정처는 장소 섭외 등 행정적인 지원을 하겠다. 다음달에 개최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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