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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솔터’할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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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홍상지 기자 중앙일보 기자
홍상지사회2부 기자

홍상지사회2부 기자

“엥, 솔터데이가 뭐예요?” 한 달 전께 취재차 서울 성북경찰서의 한 수사부서를 찾아갔다가 화이트보드에 적힌 ‘솔터데이’를 처음 발견했다. “맞혀 보세요.”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경찰관이 말했다. 알고 보니 지난 3월부터 경찰서장이 일주일에 한 번 관할 부서·지구대 직원들과 돌아가면서 점심을 먹는 날을 ‘솔’직히 ‘터’놓고 말하는 ‘날(day)’이라 하여 솔터데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왠지 분위기가 서장님만 ‘솔터’하실 거 같다”며 농담 섞어 말했더니 직원의 대답은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다’였다. 처음엔 직장 내 최고 상사인 ‘서장’이 나서 마련한 자리에 다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고 한다. 그러다 서장이 먼저 “요즘 내가…” 하며 자기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꺼내자 몇몇 직원도 용기 내 “지구대 옷장이 너무 작아요” “표창 부상 좀 바꿔 주세요” 등 각자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나왔던 얘기는 실제로 개선되기도 했다.

누구든 ‘솔직히 터놓고 말하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고, 또 살고 싶다. 그리고 그런 환경이 한 조직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명제다. 당장 위계질서가 뚜렷하기로 유명한 경찰조직 내에서도 ‘솔터데이’라는 것이 생겼고, 몇몇 기업은 이미 수년 전부터 직급 대신 이름을 부르기로 하거나 스탠딩 회의를 활성화하는 등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오지 않았나(물론 “편하게 얘기해 봐. 내가 그런 것 갖고 뭐라고 할 사람처럼 보여?” 하는 직장 상사 앞에서 편하게 이야기할 후배 직원이 여전히 많진 않겠지만).

‘솔터’는 조직을 넘어 한 사회에서도 통한다. 문재인 새 대통령 역시 현재까지는 ‘솔터’형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직전 정부를 보며 문 대통령은 이 리더십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고 있을 터다. 핵심 공약으로 ‘광화문 집무실’을 내세운 그는 새 사무실을 마련하기 전까지 일상 업무를 청와대 본관 집무실이 아닌 비서진이 일하는 여민관 집무실에서 보고 있다. ‘밀봉 인사’라 불리던 전 정부 때와는 대조적으로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인선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기저효과가 워낙 큰 탓도 있지만 꽤나 신선한 행보다.

한때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답답해하던 시민들은 이제 하루에도 몇 번씩 속보를 쏟아내는 문 대통령에게 우스갯소리로 “이제 뭐하는지 그만 알아도 될 것 같다”고 말한다. 물론 진정한 ‘솔터’의 실현이 거기서 끝나진 않는다. 그 효력이 한국 사회 전반, 그리고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갈 길이 멀다. 그래도 하루가 달리 변하는 정치 풍경 속에서 ‘이번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며 설익은 기대를 걸어 본다.

홍상지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