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끼리 짜고 허위 판매 서류로 담보대출…은행 400억 날렸다

중앙일보

입력

허위로 발행한 외상매출 채권을 담보로 시중 은행에서 660억원을 부당하게 대출받은 중소기업 대표 등이 검찰에 적발됐다. 이에 속은 국내 은행 5곳이 400억원의 피해를 봤다.

수원지검, 사기 등 혐의로 중소기업 대표 등 12명 구속기소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 허점 노려 기업끼리 짜고 660억원 대출 #빌린 돈으로 호화생활하고 비자금 조성, 전직 은행 간부도 가담 #은행도 빌려준 돈 중 400억원 회수 못할 듯

수원지검 강력부는 16일 사기 및 컴퓨터 등 사용 사기 혐의로 13개 중소기업 관계자 22명을 조사해 A씨(60) 등 중소기업 대표와 간부 등 11명을 구속기소 하고 2명을 불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또 이들에게 접대를 받고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혐의(배임·업무방해 등)로 은행 전 부지점장 B씨(47)를 구속하고 다른 은행 전 간부 2명을 불구속기소 했다.

A씨 등 중소기업 대표와 직원들은 2012년 2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세금계산서나 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하는 수법 등으로 국내 은행 5곳에서 660억원을 부당하게 대출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도입된 외상매출 채권 담보대출 제도를 악용했다. 판매 기업이 구매 기업에게 받은 외상 매출 채권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자료 수원지검]

[자료 수원지검]

기업이 물품이나 용역 거래에 대한 근거로 매출 세금 계산서의 일련번호 등을 금융기관 전산시스템에 입력하면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A씨 등은 은행이 세금계산서에 기록된 내용이 실제 거래된 것인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점을 노렸다. 이후 기업끼리 짜고 거래한 것처럼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은행 대출 전산시스템에 거짓 일련번호를 입력하는 수법으로 은행을 속여 대출을 받았다.

일부 업체는 금융기관 감사 등에 적발될 것을 우려해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하거나 금액을 수정하기도 했다. 서류상 매출 실적이 좋은 유령회사를 헐값에 인수한 뒤 이를 이용해 수십억원을 대출받기도 했다.

이들은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을 다른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는 데 사용하거나 비자금으로 사용했다. 벤츠나 BMW 등을 구입하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부실 대출로 국내 은행 5곳은 빌려준 돈 660억원 중 400억원 정도를 돌려받지 못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들의 범죄엔 은행 간부들도 가담했다. B씨 등 전직 은행 지점장들은 A씨 등이 부당하게 대출받는 것을 알고도 직원들에게 업무처리를 지시해 단기간에 거액을 대출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 대가로 수백만원 상당의 골프채 등과 골프접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은 규모가 매년 9조~14조원에 이를 정도로 중소기업들이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라며 "금융감독원과 국세청 등에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부정부패 사범에 대해서는 철저히 수사하고 엄단하겠다"고 말했다.

수원=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