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TONG] “TV·영화에 없는 연극만의 매력은…”

TONG

입력

업데이트

by 이영락·김이신

연출가라는 직업은, 특히나 연극을 연출하는 일은 과연 어떤 것일까.

사전적 설명만으로는 막연하다. TONG청소년기자들이 연극 '가족'(이용찬 작)의 구태환 연출을 인터뷰했다. '가족'은 국립극단(예술감독 김윤철)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의 일곱 번째 작품으로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지난 1958년 국립극단의 시공관(당시 명동예술극장) 초연 이후 59년 만이다.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몰락해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청소년기자들은 공연을 직접 관람한 뒤 구 연출을 만났다.

-‘가족’을 연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국립국단에서 의뢰가 와서 대본을 읽고 선택했습니다."

-가족과 관련된 작품을 많이 연출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사실 제가 실제로 연출한 작품 35개 중 가족과 관련된 작품은 4개뿐이에요. 그런데 그 작품들이 전부 잘 됐어요. 롱런하거나 수차례 반복해서 공연했죠. 그래서 사람들은 제가 가족에 대한 작품을 많이 한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아요. 가족 이야기를 연출했을 때 관객들이 더 좋아해주셨어요."

-‘가족’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것이 있나요.
"해방 이후 남북 분단과 전쟁 등 정치 현실, 역사, 그 배경 등을 통해서 격동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해체되어 가는 과정을 이 작품에서 보여주려고 했어요. 지금 2017년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 우리 역시 격동기 속에 살고 있고 그 모습이 작품 속 1950년대 가족의 모습과 참 비슷해요. 가족도 점점 해체되어 가고 있고 1인가구도 크게 늘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관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요."

-극 중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 부분에서 많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60년 전 쓰여진 이 작품에서 현대 시점에 맞춰 의도적으로 바꾼 부분이 있으신가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야단치는 것은 대본에 있는 내용인데, 정확한 행동 지문은 없었어요. 대사와 상황이 제시돼 있는 상태에서 배우들과 연습하면서 이런 저런 표현방법을 찾은 것 같아요. 여러분도 그렇게 아버지에게 혼난 적 있죠? 저도 아이를 키우거든요. 아들이 중학생인데 야단친 적이 있어요. 이번 작품 연출하면서 반성을 많이 했어요(웃음).

성격이라는 건 유전되는 부분도 있지만 성장환경, 특히 양육 과정에서 부모를 통해 결정되는 측면이 커요. 장남인 종달이라는 인물은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죠. 이 사람에게는 의존성 성격장애와 회피성 성격장애가 있어요. 그래서 언제나 위축되어 있고 사람을 만날 때 항상 거절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죠. 그리고 낙인의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부모가 ‘넌 이래서 안돼!’, ’넌 아직 어려’ 이렇게 얘기하죠. 어릴 때 부모로부터 낙인 찍힌 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성장했을 때 독특한 성격을 형성하기 쉬운데 그게 회피성, 의존성 성격장애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양육 과정 속에서 부모를 통해 형성되는 자신만의 독특한 성격들, 그런 게 공감이 됐을 거예요."

-이번 작품에서 가장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장면은요?
"부모는 항상 미안해해요. 순간의 분노를 억제하지 못해서 야단치지만 그게 다 진심은 아닌 거죠. 작품에서도 말하죠. '미안하다. 내가 너를 미워해서 그런게 아니다.’ 부모라는 것, 가족이라는 것은 그런 진심들이 있는거죠. 그런 장면이 저한테 인상깊었어요. 종달이 마지막에 아버지더러 이제 좀 들으시라고, 내가 처음으로 얘기하지 않냐고 하잖아요. 33년만에 처음으로 아들이 아버지한테 얘기하는 걸 좀 들으시라고 진심어리게 얘기하는 부분이 굉장히 가슴에 와 닿았어요. 아버지와 아들은 사실 굉장히 가까운 사이잖아요. 그런데 둘 사이의 소통이 어려웠고 마침내 아들이 소통을 원해서 자기의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이었던 거죠."

-특히 청소년들에게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
"자기주체성을 가지라고 하고 싶어요.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잘 찾으라고요. 부모님 말씀은 당연히 잘 들어야 해요. 부모님께서는 나를 정말 사랑해서 말씀하시는 거니까. ‘왜 내가 하려는 걸 못하게 하지’ 하면서 반감을 갖지 말고, 그 속에는 나를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극중에 ‘아버지는 그래도 날 정말 사랑하셨다. 나도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대사가 있잖아요. 그 마음, 부모님의 진심을 느끼려고 노력하면 이해 안 되는 게 없을 거예요. 사실 부모님 말씀하시는 게 다 자식들 잘 되라고 그러는 거잖아요. 먼저 삶을 살아봤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들이 자기 삶을 적극적으로 헤쳐나가는 모습을 잃지는 않았으면 해요."

-누워 있는 집 모양의 무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화가가 사과를 그릴 때 사과의 겉모양만 보면서 그린 것과 사과의 맛을 보고 나서 그린 것은 다를 수 있어요. 사과의 향기, 그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면 사과의 외형만 그리는 게 아니라 사과에 대한 자기의 생각이나 추억, 맛이나 향을 그릴 수 있게 되죠. 그 사람만의 사과가 나오는 거예요.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사과를 그리는 사람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 나오는 집도 그 당시 주택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고,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가족의 의미, 위태로운 한 가족의 모습을 무대에 그려낸 거예요. 무대 위 집이 세워져 있지 않고 눕혀져 있고, 더군다나 비스듬하고 삐뚤게 눕혀져 있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마지막에 자살하려는 종달의 모습을 마치 지붕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것처럼, 벼랑 끝에 있는 것처럼 표현했잖아요. 그런 표현을 극대화시켜서 보여주고 싶어서 그 장면에서는 집을 세웠어요. 그리고 커튼콜에서 다시 집을 세웠죠. 집이라는 것, 가족이라는 것은 눕혀있는 게 아니라 바로 세워야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가족이 세워져야 그 구성원인 개인도 세워지고 또 나아가서 사회 국가도 세워진다는 의미죠. 대한민국도 바로 세워져야 된다는 의미를 작품내용과 별개로 커튼콜에서 전달하고 싶었어요. 관객들이 각자 집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연출가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원래는 연기를 하려고 했어요(웃음). 실제로 연기를 하기도 했죠. 미국으로 유학 가서 연기를 배웠어요. 그런데 유학 가기 전에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개관 공연에 참여했는데, 그때 연출가가 이탈리아 분이셨어요. 굉장히 근사해 보이더라고요. '연출가는 참 근사하구나' 생각하면서 막연한 동경이 생겼죠. 연기도 매력적이지만, 연출은 모든 것을 자기가 담당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모두에게 요구하고 또 책임지잖아요. 그런 부분이 매력적이었어요.

저도 여러분처럼 고2 때 처음으로 연극을 봤어요. 그때 연극을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웃음). 최민식 배우께서 나오는 에쿠스라는 작품을 보고 연극에 사로잡혀서 나는 연극을 꼭 해야 되는 줄 알았어요."

-연출가라는 직업을 가진 것이 만족스러울 때는 언제였나요.
"내 작품의 배우가 박수를 받고 칭송 받을 때요. 그리고 관객이 작품을 보고 나서 삶이 바뀌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내 연극을 보고 그저 '아 재미있다’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의미를 돌아보고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였구나’ 깨닫고 돌아갔다는 얘기를 해줬을 때 기분이 좋았어요."

-그럼 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요?
"현실이 되게 힘들죠(웃음). 관객이 3명 온 날도 있었어요. 그 날은 비도 많이 와서 정말 하기 싫었지만 배우들을 설득해서 공연을 했어요. 또, 연극이 홍보하기도 어려워요. 사실 연극이 매체적으로는 덜 진화했잖아요. 어떻게 보면 약자에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연극 보는 것을 특별한 행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연극을 본다는 것이 일상적인 게 아니죠. 그러니까 연극을 보는 관객도 적고. 좋은 연극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관객이 찾아주지 않을 때 굉장히 괴로워요."

-TV 프로그램이나 영화와 다른 연극만의 매력을 알려주세요.
"거꾸로 제가 물어볼게요. 오늘 연극 보니까 TV나 영화랑 어떤 게 달랐어요?

(TV나 스크린으로 볼 때보다 생동감이 느껴졌고, 배우의 표정, 눈짓, 미세하게 몸이 떨리는 것조차 세세하게 눈에 보여서 그 사람의 정서가 저한테 잘 전달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맞아요. TV는 내가 채널을 돌릴 수는 있어도 프로그램 자체에 영향을 줄 수는 없죠. 관계성이 없고 일방적이에요. 하지만 연극에서는 배우들이 공연하면서 관객의 반응, 관객이 얼마나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 다 알아차려요. 관객과 배우가 서로 에너지를 주고 받죠. 배우는 관객에게 주고 관객이 다시 배우에게 돌려주고 배우는 그걸 받아서 또 다시 관객에게 줘요. 이런 현상이 공연 내내 생기죠. 그러면서 에너지가 자꾸 커지게 돼요. 배우와 관객이 같이 공연한 거나 다름없는 거예요. 공연장에는 이런 신비로운 일체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연극만의 매력이죠.

그리고 연극은 종합예술이에요. 연기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 무대도 휼륭해야 하고 또 작품에 맞는 조명, 음향, 음악 그리고 의상, 소품 등이 다 어우러져서 좋은 작품이 나오거든요. 어느 한 장면만 신경쓰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이 처음 객석에 들어와서 자리에 앉고 마지막으로 커튼콜이 끝나고 돌아가는 때까지가 전부 연극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연출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공부 열심히 하세요. 연출이든 연기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해요. 굳이 연출이나 연기를 전공하지 않아도 돼요. 오히려 연출을 잘 하려면 철학이나 미학, 국문학, 역사 같은 걸 공부하는 편이 훨씬 도움이 돼요. 왜냐하면 작품들이 그런 것들을 다 담고 있거든요. 실제로 명배우, 명연출들 보면 연기나 연출 전공이 아니에요. 연출이 단순히 기술을 연마해서 습득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공부하는 게 되게 중요해요. 정말 연출을 하고 싶으면 최선을 다해 공부해서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너무 고지식한가요?(웃음)"

-연극을 처음 보는 청소년들이 어떻게 연극에 접근해야 할까요.
"일단 즐기세요. 국립극단에서 하는 작품들을 추천해요. 푸른티켓(만24세 이하에게 한정수량의 티켓을 1만원에 판매하는 제도)이 있어서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기도 하고요. 엄선된 작품을 훌륭한 배우와 연출진, 스탭들이 최고의 환경 속에서 준비하기 때문에 좋은 공연을 볼 수 있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극이 오락적인 측면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연극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연극은 사유에요. 철학의 최종 목적지, 꽃이 연극이라고도 해요. 사르트르, 카프카 같은 철학자들이 자신의 사유의 정점을 무대 위에서 표현하기 위해 희곡을 쓰고 연극을 올리기도 했죠. 연극을 공연하는 극장은 사실은 즐기는 곳이라기보다 생각하는 장소에요. 철학적 사고를 하는 곳이죠. 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마냥 웃고 즐기기 위해서만 연극을 찾는다면 실망하게 될 수도 있어요."

판교고 지부 김이신(왼쪽).이영락(오른쪽) 청소년기자가 구태환(가운데) 연출을 만나 인터뷰했다.

판교고 지부 김이신(왼쪽).이영락(오른쪽) 청소년기자가 구태환(가운데) 연출을 만나 인터뷰했다.

글=이영락·김이신(판교고 2) TONG청소년기자 판교고지부
사진제공=국립극단

[추천기사]
여행하는 PD 탁재형 “해외 취재요? 그건 그냥 출장이죠”
(http://tong.joins.com/archives/38694)


▶10대가 만드는 뉴스채널 TONG
바로가기 tong.joins.com

Copyright by JoongAng Ilbo Co., Ltd. All Rights Reserved. RSS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