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국식이 항상 답은 아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31호 31면

나는 예중, 예고, 예술 대학교 출신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지휘자 두 사람을 만나게 됐는데 둘은 서로 정반대라 해도 좋을 정도로 판이하였다.

첫 지휘자는 경쟁이 치열한 예중에 실기 시험 보러 갔을 때 처음 뵙게 된 오티스 선생님이다. 이 분은 당시 음악 교육계의 거물로 엄격하기로 소문나 있었다. 내가 연주하는 동안 시종 정색하고 있던 오티스 선생님은 초등학교 6학년생밖에 안 된 나에게 진지한 말을 건네며 연주를 중단하게 했다. 나는 당연히 낙방한 줄 알았지만 몇 주 뒤에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그 후로 3년 동안 그의 지휘봉 밑에서 음악을 배웠다. 우리 학교 교향·목관·재즈악단 등은 오티스 선생님의 지도로 지역과 전국적인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휩쓸었다. 많은 선배가 줄리아드 등 명문 음대로 진학했다.

오티스 선생님은 한국 사람들이 ‘미국의 선생님’이라고 하면 널리 가진 선입견인 ‘친구 같은 교사’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는 분이었다. 오티스 선생님의 수업이 있을 때면 수업 전 복도에서 망을 보던 학생이 허겁지겁 교실에 달려 들어와 ‘오티스 쌤 오신다!’고 했고 그러면 떠들거나 연습했던 아이들은 일시에 멈추고 편하게 앉아 있던 아이들은 얼른 자세를 고쳐 바르게 앉았다. 이렇게 선생님이 들어오기 전부터 준비된 상태로 있으니 바로 수업을 시작할 수 있었고 수업 시간은 1초도 낭비된 적이 없었다. 또한 많은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서는 무조건 선생님을 이름으로 편하게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오티스 선생님을 이름으로 부르는 걸 시도한 아이는 3년 동안 딱 한 명밖에 보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오티스 선생님의 후임이 새로 왔다. 이 선생님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미국 교사’로 학생과 친구처럼 지내는 친절한 분이었다. 학생들은 이제 마음 편하게 교향악단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돼서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이전의 무거운 분위기는 사라졌다.

그러나 대회에서 한결같이 만점만 받아 온 우리 학교 교향악단의 평가는 머지 않아 ‘매우 우수함’에서 ‘우수함’으로 떨어졌고 끝내 예고가 아닌 일반 학교 교향악단이 받을 정도인 ‘좋음’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업시간엔 아예 통제가 안 되는 날도 많았다.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편함에 안주하기보다 우수함을 위해 노력한다. 그런 점이 나에게는 매력적이었다. 미국식이 항상 답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이클 엘리엇
무료 유튜브 영어 학습 채널·팟캐스트 'English in Korean' 운영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