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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경쟁은 방송으로 족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31호 29면

‘프로듀스 101’ 시즌2가 화제다. 나도 참 좋아한다. 까칠해진 사춘기 아들과 일말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본다는 건 핑계다. 그냥 재밌어서 본다. 초기엔 싹수가 노래 안쓰럽던 연습생들을 ‘나의 소년’으로 품고 다마고치처럼 키우는 ‘인큐베이팅’의 재미가 있다. 여기서 경쟁은 골격이자 깃털이다. 비디오 등급심사부터 개인기와 댄스 배틀, 곡 배정 달리기까지 매 순간이 경쟁이다. ‘국민 프로듀서’의 지위를 부여받은 시청자들은 무려 천만이 넘는 누적투표로 이 경쟁에 불을 붙인다. 지난주 방송은 38명이 대방출 되는 순위 발표회로 점철됐는데, 서늘한 표정으로 한 명 한 명 호명하는 ‘국민 프로듀서 대표’ 보아는 딱 저승사자였다.

‘인큐베이팅’의 트라우마

11명 안에 들면 꽃길이 보장된다고 해도 내 아들은 절대 내보내고 싶지 않은 건 이 살 떨리는 경쟁 시스템 탓이다. 실력과 인기의 투트랙인데, 팀을 짜 실력을 겨루는 척 진짜 경쟁은 개인의 몫이다. 그룹 배틀에서 팀을 잘 이끌어도 자기 매력을 어필하지 못하면 소용없다. 튀어야 사는 걸까? ‘인성 논란’에서 ‘수염 논란’까지 쉼 없이 제기되는 논란들을 보면 매사에  살얼음판이다. 이 살벌한 경쟁에 바쳐진 제물들이 정말 ‘국가대표 아이돌’이 될까. 시즌1의 소녀들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서바이벌 시스템이 예술의 영역에서도 발견된다. 지난주 대학로에서 국립극단 ‘작가의 방’ 사태 수습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문제 제기자인 고연옥 작가와 ‘작가의 방’ 참여작가들, 국립극단 김윤철 예술감독 등이 참석해 검열 문제를 포함한 광범위한 논쟁을 벌였지만, 사태의 본질은 ‘경쟁’이었다. ‘작가의 방’이 전도유망한 작가들을 초빙해 “경쟁없이 공동워크숍을 거쳐 국립극단을 위한 작품을 쓰라”고 해놓고, 막판에 일부에게만 공연 기회를 부여한 게 문제였다. 탈락한 김슬기 작가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의 선정·탈락이라는 이분법이 트라우마가 됐다. 국립극단은 문턱을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최근 공연계에선 ‘인큐베이팅’이 화두다. 신진 예술가를 키운다는 취지는 좋지만 서바이벌 예능을 흉내낸 경쟁 시스템이 문제다. 열린 공모제도 대신 교육과 경쟁, 당락 평가를 거쳐야 하는 ‘인큐베이팅’으로 신인 등용문이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성과주의에 길들여진 창작자들이 과연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고연옥 작가는 “지금은 축소·변형된 대표적인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CJ크리에이티브마인즈도 지원 규모가 커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혹독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작가들의 본질적인 세계관이 흔들리게 됐다”고 짚었다. 작가를 돈으로 길들이면서 극작 생태계가 흐려졌다는 말이다.

지난해 시작된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아카데미도 전신인 ‘아야프(아르코 영 아트 프런티어)’에 없던 경쟁구도가 문제가 됐다. ‘중대극장 공연’이라는 사업성과를 향해 수차례 중간평가에서 탈락자들을 양산했다. 한 참가자는 “50명에서 30명으로, 15명으로, 7명으로 또 줄여 공연 기회를 감사하게 주시는 경험을 수치스럽게 했다”며 씁쓸해했다. 이런 불만을 수용해 올해는 탈락자 없이 지원금 차등지급으로 변경했지만 경쟁구도는 여전하다.

예술이 과연 ‘인큐베이팅’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자유로운 영혼을 키워야 할 예술가들을 지원금과 공연 기회를 미끼로 평가의 틀에 가둬놓고 스트레스를 준 뒤 탈락의 고배까지 마시게 하는 시스템은 대체 누구를 위한 인큐베이팅인가. ‘작가의 방’에서 탈락했지만 수치심 때문에 침묵했다는 이오진 작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내 작업은 누구에게 선택받지 않아도 여전히 의미있고 귀한 작업이라는 것, 그리고 극작가는 누군가에게 교육받아 성장해야 하는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팀과 함께 고민하며 견고한 나의 세계를 세워가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서바이벌 경쟁은 자극이 생명인 TV예능 프로에서만 보고 싶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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