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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국이 만난 사람

외국서 이주한 아이들, 편견 속 발을 땅에 못 대고 붕 떠 있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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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강은이 안산글로벌청소년센터장 

강은이 센터장이 다문화 아동들의 수업을 지켜보고 있다. 강 센터장은 “이주 배경 아동들을 이방인의 시선과 편견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강은이 센터장이 다문화 아동들의 수업을 지켜보고 있다. 강 센터장은 “이주 배경 아동들을 이방인의 시선과 편견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1층 로비를 예쁘게 꾸며놨다. 큰 숲 그림이 시원하다. 세계지도에 각국 말로 인사말을 오밀조밀 적어놨다. 입구에 놓인 안내 소책자는 한글 외에 영어와 중국어를 같이 썼다. 로비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사내아이 서너 명이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말이다.

안산에 이주배경 아동 8000여 명 #한국에 적응 못해 학업 중단율 높아 #장기 프로그램 만들어 맞춤 지원 #외국 국적 아이들 바우처 등 안 돼 #안 도와주면 범죄 저지른다는 편견 #아이들을 더 고립시키는 부작용 #우리 사회 ‘다문화’ 수용에 미성숙 #다르면 즐겁고 풍성하고 재밌는데 #불편한 일이 생길 거라고만 생각

경기도 안산시에는 외국인이 전국에서 가장 많다. 3월 말 현재 등록외국인은 5만2994명. 전체 인구 74만502명의 7.2%다. 외국 국적 동포까지 포함하면 7만6616명으로 전체 인구의 10.3%나 된다. 다문화 청소년 문제의 현장 사정을 듣기 위해 지난 10일 강은이(42) 안산글로벌청소년센터장을 만났다.

센터 1층에는 꿈다리 상담실이 있다. 이주 배경 청소년들의 진학 지도를 한다. 3층 교실들에서는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4층 강당에서는 중도입국 아동들이 유희를 통해 한국말을 익히고 있다. 어린 시절 대부분 외국에서 보내다 한국인과 재혼한 부모를 따라 뒤늦게 입국해 말이 통하지 않고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도 없는 아이들이다.

“저희는 ‘복지’에 목표가 있어요. 보통 프로그램은 길어야 1년짜리 집단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 한 사람의 상황이 다 다르잖아요. 그런 아이들은 기간을 정해놓지 않고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후원금을 연결해주고 의료비·주거 문제를 해결해 준다거나 하며 돕고 있습니다. 그 위에 집단 프로그램의 기둥들이 있는 거예요.”

강 센터장이 내민 팸플릿에는 ‘안녕, 공동체학교’ ‘꿈빛학교’ ‘꿈다리 상담실’ ‘다톡다톡’ ‘꿈꾸는 아이들’ 등 10여 가지 프로그램이 소개돼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부모가 한국 문화와 정보가 부족해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있어요. 한국사를 배우는 데 따라가기 어렵고 부모도 설명해주기 어려운 거죠. 그래서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역사탐험대를 1년짜리로 진행하며 보충해 줍니다.”

이 센터에 등록된 아동은 24개국 3000명 정도다. 안산시에 거주하는 이주배경 아동의 숫자는 공식집계로 7000~8000명. 그중 30~40%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아동은 대부분 이 센터에 연결 고리를 갖고 있다고 강 센터장은 설명했다.

“이 전에는 분리 중심이었어요. 이주배경 아동을 도와주지 않으면 범죄를 일으킬 대상으로 보고 그걸 막기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그런데 그게 오히려 이 아이들을 더 섬으로 고립시키거나 낙인(烙印)감을 갖게 하는 등 부작용이 있었어요. 그래서 개인의 욕구에 맞춰 일회성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편견은 많이 개선됐나요.
“전국 지수라고 보기 어렵지만 안산은 많이 개선돼 있는 상태예요. ‘다문화=안산’으로 인식돼 지원도 많고, 정책도 항상 안산시를 시범지역으로 합니다. 그래도 다문화특구거리가 있는 원곡동에 일반 주민들은 오고 싶어 하지 않죠. 위험하게 생각한다든가, 지저분하게 생각한다든가….”
강은이 센터장이 다문화 아동들의 수업을 지켜보고 있다. 강 센터장은 “이주 배경 아동들을 이방인의 시선과 편견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강은이 센터장이 다문화 아동들의 수업을 지켜보고 있다. 강 센터장은 “이주 배경 아동들을 이방인의 시선과 편견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2015년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를 보면 학교에서 문화 차이로 학업을 중단한 아이가 18.3%다.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 국적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는 학업 중단이 별로 없어요. 중도 입국한 아이들이 학업 중단율도 높고, 차별을 경험하거나 자해를 하거나 여러 가지 위기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아요.”

왜 그런가요.
“외국인 근로자는 동반입국이 안 되고 동포 근로자만 자녀를 데려올 수 있어요. 또 재혼해서 원 자녀를 데려오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아이들은 더 큰 문제가 있죠.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는 것 외에도 새로운 가족 구성원과 생활하면서 차별을 경험하거나 학대를 당하는 스트레스가 있죠. 이 때문에 중퇴하는 경우가 많아요.” 
강은이 센터장이 다문화 아동들의 수업을 지켜보고 있다. 강 센터장은 “이주 배경 아동들을 이방인의 시선과 편견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강은이 센터장이 다문화 아동들의 수업을 지켜보고 있다. 강 센터장은 “이주 배경 아동들을 이방인의 시선과 편견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이주배경 아이들은 말이 안 통하고 문화적으로 이질감을 느껴 발을 땅에 대지 못하고 붕 떠 있다. 그 아이들이 태어나 자란 나라 중에는 흡연에 관용적인 나라도 있고. 성(性)적으로 빠른 나라도 있다. 한국에서는 선생님이 ‘야, 이놈시키’ 해도 상처를 입지 않는다. 그러나 이주배경 아이들은 맥락 없이 들으니 굉장히 모멸감을 느낄 수 있다.

“부모들도 처음부터 자녀를 노동자로 데려오는 경우가 많아요. 또 재혼가정에 들어온 아이들 중에는 새아빠가 여자아이들을 성추행하거나 남자아이들을 신체적으로 심하게 학대해서 아이가 자해를 시도하는 일도 있습니다.”

부모가 왜 돌보지 않나요.
“엄마도 내 자식에 대해 애착이 별로 없는 경우들이 있어요. 본국에서 자녀들을 돌봐주던 사람이 죽어서 어쩔 수 없이 데려오는 경우가 있어요. 어린 시절을 함께 안 보내 자식이지만 남 같은 거예요. 이런 부모들의 정서적 학대나 방임 때문에 옥상에서 뛰어내린 친구도 있었어요. 돈을 벌려고 마약 밀매를 하다 추방당한 경우도 있었고요.”
늘 긴장하겠어요.
“네. 얼마 전 중학교 1학년인 14세 아이가 자해해서 병원에 입원시켰어요. 그 친구도 새아빠가 신체적으로 학대를 심하게 했어요. 그 때문에 결국 이혼하고, 엄마가 새 동거인을 만났지만 그 아이가 자살을 시도했어요. 그런 불안 때문에 이유도 모르고 두통과 복통을 계속 경험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센터에는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초초초미숙아로 태어난 난민 아이가 있었어요. 병원비가 거의 7000만원 나왔어요. 병원에서는 난민 아이가 오면 선금을 안 내면 치료해주지 않아요. 원무과에서 사채업자처럼 저희에게 돈을 독촉해서 5000만원 가까이를 구해줬죠. 너무 힘든데 포기할 수는 없고. 그 아이가 지금 잘 크고 있어요.”

다양하게 도와주네요.
“외국 국적 아이들은 바우처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돼요. 부모들이 아이를 비싼 돈을 들여 심리치료 할 생각은 꿈도 못 꾸죠. 그렇게 방치되는 아이들에게 상담뿐 아니라 치료 지원까지 해주거든요.”

10대 후반 아이들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다.

“어떻게 여기서 살아남고 체류할 것인가가 관심이죠. 그러려면 자격증을 따야 해요. 그걸 지원해줘요. 자격증을 따면 F4 비자를 받을 수 있고, 영주권·귀화까지도 갈 수 있어요. 그러면 나가지 않아도 돼요.”

그 돈은 어디서 나옵니까.
“외부 펀드로 지원을 받는 거죠. 한미약품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도와줘요. 안산시도 인건비와 여러 가지 지원해줘요.”
우리 사회도 바뀌어야죠.
“우리 사회가 다름을 받아들이는 게 미성숙하다고 할까, 유치하다고 할까. 백인이나 영어권 사람에게는 더 허용적이고, 굉장히 조심하고, 나머지 유색인종에 대해서는 굉장히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요. 백인 아이와는 놀고 싶어 하는데 흑인은 놀려요. 그렇지만 그 흑인 아이가 영어를 쓰면 함부로 못해요. 부모들의 언행이 중요해요.”
우리는 다름을 잘 못 견디는 것 같아요.
“다르면 불편한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즐겁고, 더 풍성해지고 더 재미있어질 거라고 생각을 못해요.”

강 센터장은 중앙대 청소년학과에서 사회복지를 부전공했다. 2003년부터 제정구씨의 작은자리종합사회복지관에서부터 빈곤 아동 관련 일을 했다. 이주 아동도 본질은 빈곤 문제라고 그는 설명했다. 왜 이런 일을 시작했느냐고 묻자 그는 “제가 빈곤 아동이었으니까요”라며 웃었다.

[S BOX] 다문화 아이 “나도 도와주고 싶어” … 그림 판매 수익금 기부도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원인은 빈곤이다. 거기에 언어와 문화의 차이, 이방인으로 밀어내는 시선까지 겹쳐 더 힘들게 한다. 그래도 힘들어 넘어지는 아이는 일부다. 대부분 열심히 산다.

우선욱(18)양은 고2다. 어머니가 필리핀계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셔 어린 시절을 필리핀에서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와 어려움을 겪다 악기를 접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무한동력장치’를 발명하는 물리학자가 꿈이다. KAIST에 진학하려 한다. 원룸에서 피곤하게 일하고 온 엄마가 스탠드 불빛에 잠을 설칠까 걱정이다. 센터가 꿈 지원금으로 독서실을 이용하게 해 줬다.

박찬영(18)군은 어머니가 태국계다. 아버지의 오랜 지병으로 어머니가 생계를 꾸렸다. 센터가 지역 미술학원에 지도를 요청했다. 2010년 한국전쟁 60주년 기념 한국-태국 우정 행사 때는 어머니의 모국인 태국을 방문, 그림을 전시했다. 박군은 바자·후원행사·송년회 등에서 그림을 판매하고 수익금을 기부한다. “제가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까 저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다니엘(14)군은 콩고에서 난민 신청으로 한국에 온 엄마와 함께 산다. 예체능에 만능이다. 축구 감독과 야구 감독이 서로 대표선수로 뽑으려 한다. 2013년 MBC ‘안녕?! 오케스트라’에 출연한 뒤 5년째 비올라를 연습한다. 초등학교 때 반장을 맡고, 중학교에서도 상위권 성적이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한국어와 영어·프랑스어 모두 자유롭다. ‘인도적 체류 허가자’ 중 처음으로 귀화(국적 취득) 신청을 해 놨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