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아탈리 칼럼

‘시스템’ 성토(聲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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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자크 아탈리아탈리 에 아소시에 대표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자크 아탈리아탈리 에 아소시에 대표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프랑스 대선은 앞서 선거를 치른 영연방·미국·네덜란드와, 선거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나라들의 사례에서와 마찬가지로 상당수의 후보들이 모든 불행과 실패와 난관의 원인을 제공한 ‘시스템’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스템이야말로 실업, 빈곤, 열악한 주거 환경, 생활고, 건강에 좋지 않은 식생활, 테러 행위의 주범일 거라는 추측을 하는 셈인데 어떤 사람들은 기후 온난화까지도 시스템 탓이라고 주장한다.

각국 선거, 시스템 반대 잇따라 #시스템 비난 무조건 동조보다 #고발의 본질 바로 볼 수 있어야 #시장민주주의 개선 노력할 때 #민주주의 지혜와 시장활력 균형

한 시대에 만연한 불행 전반을 두고 단 하나의 원인을 찾으려 하는 것은 새로운 현상도 아니고 일반적인 관습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파르마콘(pharmakon)’이라 일컬었고, 우리는 그것을 유다 지방의 옛 관습에 준거해 ‘희생양’으로 번역했다. 모두의 죄를 대신해 벌을 받는 희생양이 있기에 인간들은 서로를 향해 칼을 갈아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으며, 희생양은 죽음 그 자체로 사회 질서를 회복한다. 수 세기에 걸쳐 마녀, 집시, 흑인, 아랍인, 프리메이슨, 유대인, 기독교인, 회교도를 비롯해 그토록 많은 사람이 무리의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집단과 민족들의 희생양이 되는 책임을 떠안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책임이 사회나 종교 또는 국가 집단에 전가되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대신 사뭇 생소한 개체가 희생양의 역할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거기 붙은 이름이 ‘시스템’이다.

시스템이라는 단어는 이 말을 사용하거나 듣는 사람들 각각을 모두 만족시키기에는 상당히 막연한 개념이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인들을 가리키느라 이 단어를 가져다 쓰고 또 다른 사람들은 시스템이란 기업 대표나 재벌이라고 본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 시스템은 프랑스나 유럽의 고위공무원이다. 더 보편적으로 말하자면 사회가 지금처럼 돌아가게 만든 그 모든 것이 시스템이다.

재차 더 보편적으로 말하자면 시스템은 과두제라 불리는 경기 규칙 안에서 성공한 이들 전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또 한 번 더 일반적인 견지에서 보자면 시장경제, 국경개방, 의회제도, 민주주의처럼 현재 적용 중인 경기 규칙 자체가 시스템이기도 하다. 이 시스템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세습의 형태로 모든 특권을 누리는 가운데 정작 자기가 처한 상황은 나아지리라는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오늘날 여러 측면에서 실망스러운 데다 공정하지도 않고 수용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귀결되어 가고 있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이 단어를 듣는 사람들도 여기에 특수한 의미를 부여하는데, 이들에게 시스템은 대개의 경우 만족스럽지 않다는 느낌, 불공평하고 실망스럽다는 인식의 원인이다.

사실 많은 선진국이 고난을 겪고 있다. 빈곤 문제가 극심하고 사회 불안도 엄청난 데다 실력주의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실업과 빈곤 문제라면, 이번 대선을 거치며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증거를 봤다. 굳이 각종 통계를 찾아보는 일이 무의미할 정도다. 많은 사람이 비참을 접하며 공포를 느낀다. 당장 자신에게 닥친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나중에 가서는 본인이나 자녀들이 그 비참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으니 겁이 난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고 너무도 비참한 지경에 처한 나라에서 견디며 살아갈 자신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미래는 더 나아질 거라 보는 사람들과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우리 정체성을 되살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풍요를 견딜 수 없는 사람들과 빈곤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로 나라가 뼛속까지 분열을 겪고 있다. 이 상황에서 성공은 수상쩍은 것, 출세는 뒤가 구린 것이라는 쪽으로 생각을 기울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보다 비판과 논쟁이 숱하게 오가는 와중에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거든,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은 무엇인지 헤아려보자. 이 사회의 어떤 면이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지 알게 될 것이며, 그런 상황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될 것이다. 또한 시스템 고발자들이 실제로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듣는 사람들의 수준을 얕잡아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도 안 되게 초보적인 일반론으로 청중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여기는 것은 아닌지도 따져보자.

어떻게 보면 우리 각자가 보는 시스템이라는 것은 그저 타인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타인의 성공을 인정하기 힘들 때 타인의 역량과 재력, 성공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의 그 타인들 말이다. 찬찬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우리의 민주주의와 우리의 생활 양식, 우리의 세속주의 원칙, 우리의 국경 개방, 우리 모두에게 예외 없이 주어진 역경을 받아들이는 능력 창조에 기여한 그 모든 것을 돌이키는 일이 과연 반드시 필요한가. 오히려 시장민주주의라는 이 연약하고도 민감한 균형을 심층에서부터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 노력 위에서 민주주의의 지혜가 시장의 활력과 균형을 이루는 길이 열릴 것이다.

자크 아탈리 아탈리 에 아소시에 대표·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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