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통령 문재인] “문재인 당선인, 트럼프 빨리 만나 개인적 신뢰 쌓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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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 순간부터 북핵 문제를 비롯한 무겁고도 어려운 외교 현안들을 마주하게 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변칙적인 한반도 정책,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과정에서 생겨난 중국과의 갈등 등 주변 상황은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다.

미 전문가들이 본 새 정부 외교과제 #일방적 햇볕정책으로 전환하거나 #사드 뒤집으려 할 땐 한·미 마찰 #정책 오해 없게 서프라이즈 자제를 #한·미 동맹 큰 문제는 없을 것 #대북 압박·대화 역할분담도 가능 #트럼프와 한반도 비전 공유를

중앙일보는 대선 직전 한반도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 내 전직 관료, 군사 전문가, 의회 출신 인사를 대상으로 ‘대선 이후의 한·미 관계’에 대해 심층 서면 인터뷰를 했다. 한국의 대선 상황을 꿰뚫고 있는 이들의 답변엔 한국의 신 정권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교차했다. 트럼프 정부와의 정책 이견과 오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다소 앞섰지만, “한·미 동맹의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 고 낙관하는 기류 역시 강했다. 사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선 “이미 뒤집기 힘들며, 새 정권이 이를 뒤집으려 할 경우 미국 내 비판이 거세질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군사전문가인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연구원은 “한국의 새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 ‘중국은 사드와 유사한 미사일방어시스템(HQ-19, S-400)을 갖고 있고, 한국 주변에 (대륙간탄도미사일 탐지용) 초지평선(OTH) 레이더를 배치하고 있는데 왜 한국의 한 개의 사드 레이더가 문제가 되는가’라고 이중성을 지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모든 응답자들이 강조한 건 “신속히 양국 지도자들이 만나 개인적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첫 단추’의 중요함이었다.

◆새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두 정상 간의 ‘신뢰 구축’이 압도적이었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전 상원 외교위 전문위원)는 “북한에 얼마나 강한 압박을 가할 것인지, 대화에 나설 경우 어떤 목표를 채택할 것인지 접점을 빨리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에서 27년간 재직한 앨런 롬버그 전 수석 부차관보는 “진보 진영 대통령은 미국에 추종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겠지만 정말 중요한 성공의 포인트는 한·미 동맹을 잘 관리하고 워싱턴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넷 연구원은 ‘통일 청사진’ 제시를 주장했다. 그는 “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북한의 엘리트들이 원할 리 있겠는가”라며 “ 한국의 새 대통령은 통일의 콘셉트와 그에 도달하기 위한 ‘길’을 신속히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 정부에 대한 우려는=‘일방적 햇볕정책’으로 나아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래리 닉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영구적 이산가족 상봉 등 햇볕정책의 일부를 재개하는 것은 좋지만 그 대가로 북한으로부터 몇 가지 중요한 양보를 얻어내야 한다”며 “미국 정부는 새 정권이 개성공단 재개, 금강산 사업 재개, 식량원조 제공 등 일방적 햇볕정책을 재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경우 트럼프는 비핵화 정책의 공조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주한미군 일부 혹은 전면 철수 검토에 나설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권 출범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 부대사였던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새 정권이 ▶사드 배치 재검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과 위안부 합의 번복 ▶대북 정책 전환 등 양국이 추구해 온 노선과 확연히 다른 길로 나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궁합 맞을까=자누지 대표와 롬버그 전 부차관보는 “한·미 동맹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자누지는 “기본적으로 한·미 동맹은 개인에 의존하지 않는 피로 맺어진 관계”라고 강조했다. 베넷 연구원은 대북 관계에 있어 한국의 새 대통령과 트럼프 간의 ‘좋은 경찰(good cop)’ ‘나쁜 경찰(bad cop)’ 역할분담론을 예상했다. 즉 한국의 새 정권은 북한에 압박을 가하면서도 숨통을 터주는 역할을 하고 트럼프는 계속 몰아치는 역할분담을 할 경우 의외로 북한의 실질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그는 “다만 이를 위해선 양국 지도자 간에 (오해가 없도록) 긴밀한 조율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향후 3개월 예상되는 변화는=닉시 연구원과 자누지 대표는 “북한 문제 등 별다른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리비어 전 차관보와 베넷 연구원은 “대선 이후 북한이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나설 공산이 크다”고 예상했다. 베넷은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할 준비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마이클 마자르 아로요센터 부소장은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 재개와 같은 당근을 동반한 강력한 대화 제안을 내놓을 수 있다”며 “당분간 북한은 (군사도발을)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롬버그 전 부차관보는 같은 맥락에서 “북한 문제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혹은 철회) 문제가 현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 정부에 조언을 한다면=양국 정부가 상대방의 의도를 오해하도록 하는 언행을 주의해야 한다는 조언이 많았다. 롬버그 전 부차관보는 “‘서프라이즈’(상의 없는 일방적 정책 발표)를 만들지 말라”고 했고, 닉시 연구원은 “동맹의 기본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정은은 미국과의 평화조약을 원하며 이게 현실화되면 수 년 내에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것이다. 미군이 한국을 떠나면 돌아오는 건 매우 어려울 것”(마자르 부소장)이란 ‘뼈’ 있는 조언도 있었다. 인터뷰 질문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마이클 그린 CSIS 선임부소장(부시 행정부 시절 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최근 사사카와재단 심포지엄에서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미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두 단계나 낮추려 했던 건 북한 문제 때문이 아니라 새 정권이 한·미 동맹을 약화시킬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었다”며 “한국의 새 지도자는 그 모든 걸 알고 있어 잘 관리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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