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결혼 전 구입한 TV 부순 남편, 재물손괴죄 기소 부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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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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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부부싸움 중 TV 모니터를 망가뜨렸더라도 자신이 결혼 전에 산 것이라면 죄를 물을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A씨가 인천지검을 상대로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사건에서 "검찰이 A씨에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것은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으로 취소한다"고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결정했다고 7일 밝혔다.

2015년 11월 결혼한 A씨는 지난해 1월 부부싸움 중 자신이 결혼 전 사놓은 TV 모니터를 넘어뜨려 화면 유리를 깨트린 혐의(재물손괴)로 입건됐다. 새벽 4시까지 TV로 무료 영화·드라마 사이트를 검색하던 중 부인이 "여자 연예인 광고 팝업이 나오는 게 싫다"며 검색을 말리자 기분 상해 벌인 일이었다.

검찰은 A씨는 재물손괴 혐의가 성립한다고 보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처분은 공소를 제기(기소)하는 데 충분한 혐의가 있고 소송조건이 갖춰져 있음에도 검찰이 여러 정황을 고려, 기소하지 않는 처분을 말한다. 그러나 A씨는 이에 불복해 "TV 모니터는 결혼 6개월 전 중고로 15만원에 산 내 고유의 재산이니 타인의 재물을 망가뜨리는 범죄인 재물손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약 1년간의 심리 끝에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로 A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형법상 재물손괴죄는 타인의 재물을 손괴하거나 은닉하는 방법 등으로 효용을 해하는 경우에 성립한다"며 "A씨에게 재물손괴죄가 성립하려면 A씨가 망가뜨린 모니터가 부인 소유이거나 공동소유여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법은 부부 일방이 혼인 전부터 가진 재산이나 혼인 중이더라도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 사람의) 특유재산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A씨가 결혼 후 부인과 함께 모니터를 사용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부부 공동소유관계로 바뀌었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어 (형법상)타인 재물을 손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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