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 역대 최고 사전투표율 5가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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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이틀째인 5일 서울 중구 서울역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많은 시민들이 투표를 하기위해 줄지어 서 있다. 우상조 기자

19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이틀째인 5일 서울 중구 서울역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많은 시민들이 투표를 하기위해 줄지어 서 있다. 우상조 기자

사전투표 마감을 1시간 30분 남긴 5일 오후 4시30분, 서울역 투표소에 사전투표를 위해 기다리는 시민들의 줄은 20m가 넘었다. 이현식(61)씨는 “오늘도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고 놀랐다. 역대 최고의 사전투표율을 기록한(26.06%) 이번 대선의 사전투표 현장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각자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다. “미리 ‘숙제’를 해놓는 느낌으로 했다” “촛불집회를 거치며 투표의 중요성을 느꼈다” 등의 이유를 댔다. 역대 최고 사전 투표율을 기록한 이유는 대략 5가지로 분석된다.

①촛불의 여운 한 표에 담다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을 경험한 시민들의 정치적 ‘효능감’은 이들의 투표 의지를 높였다는 분석이 많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달 28~29일 전국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반드시 투표할 것’이라는 적극투표층이 86.9%였다. 이는 지난 대선 때보다 7%p 증가한 수치다.
 “예상 외로 투표소가 붐벼 깜짝 놀랐다”는 회사원 정문훈(32)씨도 적극적으로 투표에 나섰다. 그는 “수백㎞ 떨어진 투표소까지 찾아가는 재외국민들의 투표 열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인증샷 등도 영향을 줬지만 무엇보다 국정농단 사태를 지켜보며 한 표의 소중함을 깨달은 게 가장 큰 이유였다”고 말했다. 허재영 연세대 글로벌인재학부 교수는 “탄핵정국에서 높아진 정치적 효능감이 사전투표의 뜨거운 열기로 이어졌다.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려는 의지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②본투표보다 편했다

장소 제약을 받지 않는 사전투표의 편리함을 시민들은 반겼다. 회사원 조현민(33)씨는 “주소지가 지금 사는 곳과 승용차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다. 그래서 회사 근처에서 사전 투표를 했다”고 말했다.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홍민수(28)씨는 “사는 곳이 인천인데 기말고사 준비 때문에 다녀오는게 부담돼 사전투표를 택했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이런 사전투표의 편의성이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점도 투표율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2014년 첫 사전투표 때만 해도 ‘미리 신고해야 되느냐’는 등의 문의가 많았다. 이제는 제도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③미리 굳힌 표심 늦출 이유 없었다

미리 표심을 굳힌 유권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한 표를 행사하고 싶어 했다. 대학생 김철은(27)씨는 “지지 후보가 명확하다보니 9일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재외국민투표율이 75%가 넘어갔다는 뉴스도 사전 투표를 결심하게 한 또다른 이유다”고 말했다.
TV토론 과정에서 지지 후보를 일찍 정하고 사전투표에 나서는데 영향을 줬다는 시민들도 있었다. 회사원 손슬기(31)씨는 “TV토론을 보면서 누가 똑똑한 인물인지 너무나 분명하게 알게 됐다. 주변에도 토론회를 보면서 마음을 굳힌 이들이 많다. 9일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사전투표 열기가 성숙한 시민정치를 낳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시민들의 높아진 정치 참여의식과 주체성이 사전투표율을 높였다. 시민들이 선관위에 감시자로 참여하는 모습 등을 볼 때 높은 사전투표율은 성숙하게 변화하는 시민정치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④인증샷 열풍과 함께 하다

SNS에 유행처럼 번진 ‘투표 인증샷’도 투표를 독려하는 효과를 냈다. 5일 오후까지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사전투표’ ‘#투표인증’ 등의 해시태그가 달린 SNS 게시물은 25만개 이상이 올라왔다. 경기도 과천에 사는 한모(29)씨는 “인증샷은 ‘다들 빨리빨리 투표해라’는 무언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주위에서 하니까 다들 더 자극받는 거 같다”고 말했다.
다양한 인증샷 이벤트에 끌렸다는 시민들도 있었다. 은창완(26)씨는 “인증샷 이벤트에 참여할 생각으로 투표했다. 또 우리나라를 살리는 일이니까 SNS에 투표한 걸 자랑도 할 수 있다”고 웃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증샷은 '나는 투표에 참여했다'는 약간의 과시욕과 동시에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효과가 있다. 인증샷붐이 투표율 증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⑤황금연휴와 함께 즐기다

최장 11일의 황금연휴는 이번 사전투표의 가장 큰 변수이기도 하다. 장소와 관계 없이 투표할 수 있는 사전투표의 장점이 연휴와 맞물리면서 시너지를 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에 살지만 부산 광화문에서 사전투표를 한 회사원 김현우(33)씨는 “여행 중에 미리 숙제해놓는다는 마음으로 투표했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모(31)씨도 가족들과 강원도 평창을 여행하면서 사전투표에 참가했다. 연휴를 마음 편히 즐기기 위해 사전투표를 택한 이들도 있었다. 회사원 박성오(29)씨는 “회사에서 5월 8일을 징검다리 휴무일로 정했다. 마음 편하게 나흘 연휴를 즐기기 위해 미리 사전투표를 했다”고 말했다.

한영익·김민관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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